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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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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들이 현대사 변혁 주도▼
5·18 민주화운동 21주년을 맞으면서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역사학자인 프랭크 설로웨이의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설로웨이의 이론을 읽다보면 만일 전두환 장군이 맏아들로 태어났다면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권력을 탈취하려고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로웨이는 25년간 가족 내 출생 순서와 성격 사이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현대사에서 정치와 과학분야의 변혁은 대부분 맞아들이 아닌 아우들에 의해 주도됐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1543년부터 1967년까지 4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있었던 28개의 중요한 과학 논쟁에 참여한 2800여명의 과학자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평가해줄 것을 100여명의 과학사 학자들에게 요청했다. 가령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죽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책이 발간된 뒤 1609년까지 진행된 논쟁에서 큰아들로 태어난 과학자들은 22%만이 지동설을 지지했지만 아우로 태어난 과학자들은 무려 75%가 지동설에 찬성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에 대한 논쟁(1859∼1870)에서는 장남 과학자의 20%, 장남이 아닌 과학자의 61%가 다윈의 편에 섰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놓고 20여년간 진행된 논쟁(1905∼1927)에서는 장남 과학자의 30%, 동생으로 태어난 과학자의 76%가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였다. 1912년 알프레드 베게너가 제안한 대륙이동설은 1967년 논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장남 과학자들은 36%만이 지지했지만 장남이 아닌 과학자들은 68%가 지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셀로웨이는 아우로 태어난 과학자들이 큰 아들로 태어난 과학자보다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평균 3배 정도 강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뉴턴, 라부아지에, 아인슈타인처럼 큰 아들로 태어났어도 혁신적인 이론을 주창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급진적 이론에 대한 반대자는 주로 장남 과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첫째로 태어난 사람은 동생보다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를 원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격하는 성향이 농후한 반면, 둘째 이하로 태어난 사람은 첫째보다 모험을 즐기고 급진적이며 편견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설로웨이는 출생 순서만이 지적 수용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학력, 가정환경, 종교, 정치적 입장, 건강상태, 출산시 부모의 연령 등 수많은 변수 중에서 출생 순서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을 따름이다. 그는 1996년 자신의 이론을 정리해 타고난 모반자(Born to Rebel) 를 펴냈다. 설로웨이 역시 장남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DJ 정부 개혁부진 원인?▼
설로웨이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진화심리학에 의해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자식이 오래 생존할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낳게 되므로 부모의 유전자를 전파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모는 일찍 태어난 아이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장남은 부모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생은 형보다 잃을 게 많지 않으므로 변화를 추구하고 모험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설로웨이의 연구 결과는 아들이건 딸이건 하나만 낳으려는 시대에는 쓸모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면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원인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됨직도 하다. 청와대와 내각, 민주당의 주요 인물들의 출생순서를 한번 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4남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2년 대선 주자들의 출생 순서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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