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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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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정주 교수와 홍성수 박사, 일본 유전학연구소 사토시 호라이 박사는 서울 제주에 사는 한국인 213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14.5%는 남태평양 토착민에게 나타나는 유전형질을 지니고 있다는 논문을 대한생물학회지에 발표했다.
사람의 세포는 핵과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 두 곳에 DNA가 있다. 핵 속의 DNA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DNA가 섞여 만들어지지만,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가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준다. 따라서 이를 추적해 거슬러 올라가면 궁극의 조상을 알 수 있고, 돌연변이 정도로 몇 대 조상인지까지도 알 수 있어 ‘분자 시계’로 불린다.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DNA 5번 영역의 ‘9-염기 결핍’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나타나는지 조사했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와 마이크로네시아인들은 돌연변이에 의해 거의 100% 이 영역의 염기가 9개 결핍돼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람들도 30∼40%가 ‘9-염기 결핍’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이 현상은 ‘남방계’ 아시아인을 구분할 때 유전학적 지표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유전자를 분석한 홍성수 박사(현재 엠바이오젠 대표이사)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집단은 대체로 ‘북방계’ 몽고인종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지만, 남태평양 집단의 유전자도 15% 가량 이어받아 결코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 박사는 “한반도에서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이기 시작한 것은 1만년 전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술과 해부학을 전공하고 한국인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오래동안 해온 서울교대 조용진 교수는 “얼굴 등의 특징을 통해 분석해본 결과에서도 한국인 가운데 20% 가량은 남방계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며 이 유전자 분석 결과에 동감을 표시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남방계는 진한 눈썹, 쌍꺼풀, 짧은 코와 큰 콧망울, 두터운 입술, 많은 수염, 네모난 얼굴, 굵은 머리카락, 검은 피부 등이 특징이다. 반면 북방계는 눈썹이 흐리고, 코는 길지만 끝이 뽀족하며, 쌍꺼풀이 없고 눈이 작으며, 입술이 얇은게 특징이다. 기업가 정주영, 정치인 권노갑, 정대철, 배우 한석규씨가 전형적인 북방계이고, 김우중, 한화갑, 배우 최민식은 남방계이다.
조용진 교수는 “남방계는 빙하기 이전에 동아시아에 퍼졌고, 북방계는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오면서 약 2만5000년 전쯤 바이칼호 근처에서 오랜 동안 빙하에 갇혀 있다가 약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서서히 동아시아에 진출했다”며 “한반도 역시 최초의 주인은 남방계였다”고 말한다. 북방계가 눈꺼풀이 두텁고 뱁새눈 모양의 작은 눈을 갖게 된 것은 약 1만5천년 동안이나 빙하에 갇혀 추위와 싸우면서 눈을 통한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적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남방계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취해 먹고 살면서 많은 패총을 남겼다. 실제로 충무 앞바다의 욕지도와 연대도, 통영 앞바다의 늑도 그리고 오키나와 등에서는 패총, 신석기, 남방계인의 두개골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과 미국의 유전학자들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1만여명의Y염색체를분석해아시아인이 3만5000∼8만9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주해 왔다는 논문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 논문 역시 아프리카를 떠나 각각 다른 길을 따라 아시아로 이주해온 남방계와 북방계가 한국, 중국 등 동북아에서 다시 만나 섞였다고 밝히고 있다. 고립된 섬사람을 빼고는 대부분이 그렇듯이 우리도 ‘혼혈아’인 셈이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