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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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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소비자간(B2C) 또는 소비자간(C2C) 전자상거래가 팽창하면서 경매사이트들이 거래하는 품목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법적으로 금지된 품목이 거래되는가 하면 신용도가 0점인 판매자가 내놓은 물건까지 경매가 허용돼 장물유통의 ‘대리인’이라는 지적도 낳고 있다.
국내 최대 경매사이트인 옥션은 하루 경매 물품수가 지난해 1월 13만개에서 올해에는 49만개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2위인 셀피아는 지난해 1월에 비해 6배 증가한 12만개 품목이 현재 거래되고 있다.
경매 메커니즘 전문가들은 국내 인터넷경매 품목들이 외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초기에는 컴퓨터 부품과 같이 시간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는 품목이 경매 물품의 주종을 이루다가 점차 공산품처럼 상대적으로 표준화된 물품, 유통 기간이 한정된 농산품 등으로 확대된다는 것.
옥션의 경우 지난해에는 주로 컴퓨터와 주변기기의 거래 비중이 높았지만 올해 들어 화장품 의류 가습기 등 일반 소비제품이 상위 10위에 들어섰다. 셀피아도 의류 잡화 생활용품의 거래가 크게 늘어났다.
이런 틈을 타 콘돔 성인물품 음란물이 빠른 속도로 유통되고 있다. 지난주중 옥션에는 ‘완전 야한 성인용 CD 5장 정품’ ‘이성을 유혹하는 페르몬 향수’ 등이 경매품으로 나왔다. 16일 하루만 콘돔세트 경매리스트는 40개에 이르렀다.
국내 경매 사이트들은 “모든 인터넷 거래는 우리를 통한다”며 기세를 올린다. 하지만 온라인 경매로 물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소비자 보호제도는 거꾸로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간(C2C) 경매를 운영하는 야후코리아는 “매주 게시되는 수십만 개의 경매 건들을 일일히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불법 경매를 이용하는 사람을 신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변명’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책은 대부분 경매 사이트가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다.
옥션은 ‘불법물 거래자에 대한 경고사항’을 공지 메뉴에 올려놓고 “철도법 87조에 의거 철도 승차권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설연휴 직전인 지난주말 검색창에 ‘기차표’를 치면 입찰에 올라온 연휴 기차표가 연일 떴다. ‘암거래’를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
온라인 물품 구매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지만 옥션의 경우는 오히려 판매자보다 구매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블랙리스트’ 제도를 최근 도입, 낙찰된 물품에 대한 구매를 거부할 경우 구매자의 신용도를 낮추는 것.
그러나 실제 경매 사이트를 통한 물품 매매에서 피해를 보는 쪽은 구매자가 대부분. 삼보컴퓨터의 한 대리점 직원은 “온라인 경매를 통해 구입한 중고 컴퓨터가 수리 도중 도난 물품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않다”며 “이 경우 구매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16일 한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S사 펜티엄Ⅱ 노트북을 팔겠다고 나선 판매자의 신용도는 0점이었다. 한마디로 ‘부실거래’나 ‘장물거래’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것.
경매 사이트는 경찰 단속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들은 “온라인 경매로 유통되는 장물에 대해 아직 한 번도 수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 안병훈 교수는 “B2C 경매 사이트가 소비자의 피해를 줄일 사전 예방장치를 보완해야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