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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사진)는 현존하는 집권자 중 가장 오래 권좌에 앉아 있다. 21일로 집권 41년 173일째다. 그는 1980년대 이후 미군 폭격 등 20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암살 위협에 직면하면서 많은 날을 사막의 텐트에서 기거했다. 카다피는 만 27세에 권력을 손에 넣었다. 1969년 대위였던 그는 11명의 청년장교들과 함께 무혈 쿠테타를 성공시켰다. 곧바로 혁명평의회를 구성해 스스로 의장에 올라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아랍공화국을 선포했다. 이후 영국군과 미군이 철수하자 석유산업을 포함한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고 외국인의 재산을 몰수했다.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고 인민 직접민주주의 구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체제는 실상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기한 독재권력이었다. 2년 뒤인 1979년부터 그는 서방과의 관계단절을 통해 아랍권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5년 12월 로마와 빈에서 동시에 발생한 폭탄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1986년 3월 미국과 영국 연합군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대규모 보복 공습을 받았고 1988년에는 270명의 희생자를 낸 팬암기 폭파사건 개입 의혹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됐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자진 폐기 결정 때까지 오랜 고립기간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는 우호적이었다. 1980년 한국과 대사급 국교관계를 맺고 2006년 9월에는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를 접견했다. 당시 한국은 리비아의 핵 폐기 경험을 북한에 전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지난해 6월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직원의 추방으로 4개월간 지속된 양국의 외교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대국민 연설’ 차남 사이프가 나선 까닭 ▼‘친서방-개혁’ 이미지로 정국 수습 노려 격화하는 반정부 시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21일(현지 시간) 대국민 연설에 나선 인물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아닌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사진)이었다. 사이프는 아버지가 권력을 잡은 뒤(1969년) 태어났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영어실력이 뛰어나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쓴 경력도 있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리비아 친서방화의 얼굴이자 개혁개방의 희망’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대표적인 친서방파이자 개혁파로 알려졌다. 현재는 공식 직함이 없지만 지난해까지 카다피국제자선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현재 카다피 국가원수의 후계구도는 차남 사이프와 4남 무타심(37)으로 압축돼 있다. 장남 무함마드(리비아올림픽위원장)와 3남 사디(리비아축구협회장)는 정치에 뜻이 없어 일찌감치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 사이프가 개혁적 마인드로 리비아의 보수파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데 반해 4남 무타심은 보수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사이프의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군 중령 출신의 무타심은 현재 공안정보 분야를 총괄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고 있다. 그런데 왜 사이프가 나섰을까. 워싱턴의 중동문제전문가 데이비드 스쳉커 씨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즐기는 카다피의 성향 때문”으로 분석했지만 또 다른 전문가는 “사이프가 갖고 있는 대내외적인 좋은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풀이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에릭 클랩턴의 세 번째 내한공연은 관객 1만2000명의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20일 저녁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기타의 신'이 두 시간 동안 선물한 마법에 푹 빠져버린 관객들은 막이 내린 뒤에도 아쉬워하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 14일 두 개의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의 클랩턴 공연장을 찾았던 북한 독재자의 차남 김정철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음악마저 이념의 종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최악의 독재국가에 클랩턴의 광팬이 있다는 것은 부조화의 극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던 기자에게 북한과 팝송의 조합은 어색하지 않다. 독재와 굶주림, 세뇌된 열광이라는 북한 외양의 이면에는 인간 본연의 감성이 죽지 않고 꿈틀대고 있다. 북한에서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아마 한국보다 많을 것이다. 저녁 무렵 경제난으로 암흑이 된 북한의 어느 마을을 지나가도 어둠 속 어디선가 기타의 선율을 들을 수 있다. 그 선율은 북한TV를 지배하는 광적인 선동 음악과는 다르다. 기자도 팝송에 얽힌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 깊은 밤 머리맡 녹음기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어 타임 포 어스(A time for us)', '디 엔드 오브 더 월드(The end of the world)'는 기숙사생의 굶주린 잠자리를 위로해 주었다. 김일성 광장의 충성맹세 모임에 나갔다 돌아온 저녁에도, 자본주의 바람을 없애자는 강연을 듣고 내려 온 저녁에도 빠짐없이 팝송을 들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의 테이프가 비밀리에 퍼질 때 주제곡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이 누렸던 인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에게 이 노래들은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와 무관한 단지 감미로운 음악이었을 뿐이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이다. 당시엔 녹음기도 잘사는 집에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양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MP3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 이미 당국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간부들도 김일성대를 다니며 팝송을 좋아했던 기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모두 정신적 일탈을 꿈꾸고 있다. 꿈으로만 그치는 일탈을 김정철은 실현했을 뿐이다. 서방음악을 '황색바람'으로 엄중히 단속하는 북한 통치자의 아들이 가장 먼저 금지선을 뛰어넘은 것이다. 하지만 정철의 '고상한' 취미가 본인이나 아버지를 교화해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김정일도 젊은 시절 정철의 어머니인 고영희와 차 안에서 밤새도록 한국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술을 마시면 러시아어와 일본어로 그 나라 명곡을 부르던 김정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군 공훈합창단에 주기적으로 찾아가 수백 명이 내지르는 광란의 찬양가를 즐긴다. 그리고 인민들에게도 그런 음악만을 강요한다. 지금은 클랩턴에 열광하는 김정철이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정철은 2007년 클랩턴의 평양공연을 추진했는데 클랩턴이 거절했다고 한다. 클랩턴이 독재국가에서 공연하는 첫 유명 음악가로 기록되길 원하지 않아서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클랩턴의 공연은 평양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안 된다'가 아니라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음악부터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와 함께 이날 공연을 본 탈북 예술인은 "북한 주민들이 클랩턴의 영어 가사는 이해하지 못해도 황홀한 기타 연주 솜씨에는 분명히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기자는 평양 시민들과 이런 공연을 함께 즐기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길 기원했다. 그런 날은 상상만 해봐도 흐뭇하다.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이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남미 혁명영웅 체 게바라의 포스터 이미지에 저작권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장발의 게바라가 군용 베레모를 착용한 모습을 적색과 흑색 색상을 사용해 그린 이 포스터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이 포스터를 제작한 아일랜드 미술가 짐 피츠패트릭 씨(59)가 최근 포스터의 상업적 남용을 막기 위해 저작권을 등록하기로 했다고 18일 보도했다. 피츠패트릭 씨는 16세 때인 1968년에 이 포스터를 만든 뒤 유럽의 혁명조직들이 쓰자 마음대로 사용하게 허락했다. 하지만 이후 이미지가 티셔츠, 콜라병, 머그잔, 열쇠고리는 물론 여성용 란제리에까지 사용되자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마구 사용돼서는 안 되겠기에 저작권 설정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말 쿠바 아바나로 직접 가 유족에게 저작권을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 NASA “36년전 분양 ‘달나무’ 찾습니다”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달나무(moon trees)’ 찾기 운동에 나섰다. 물론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찾는 건 아니다. NASA가 찾는 달나무는 1971년 1월 31일 발사된 유인우주선 아폴로 14호에 실려 달에 갔다가 돌아온 500여 종의 나무씨앗에서 자란 것들이다. NASA와 산림국은 이 씨앗들에서 싹튼 나무들을 1975년에 미 전역의 공원과 학교, 정부청사 등에 나눠줬다. NASA는 아폴로 14호가 달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지 40주년이 되는 9일을 계기로 나무 추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현재 79곳에서 달나무가 확인됐다고 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에서도 구제역이 창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농업성이 8일 보내온 구제역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지난해 12월 25일 평양시 사동 구역에서 소 6마리가 구제역에 걸린 뒤 최근까지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강원도 등 중남부 지역 48개 지역에서 구제역이 확인됐다. 이 중 15개 지역이 평양시에 집중돼 있다. 소는 의심사례가 1403마리로 집계됐으며 이 중 500마리가 감염돼 15마리가 죽었다. 돼지는 9959마리가 감염돼 8640마리가 죽었다. 특히 돼지목장이 있는 평양시 역포구역에서 돼지 4350마리가 폐사했다. 염소도 의심사례로 분류된 165마리가 모두 감염됐다. 도살처분되거나 매몰된 사례는 파악되지 않았다. 구제역이 2000년대 이후 북한에서 꾸준히 발생된 전염병이며 이전까지 매몰처분된 관례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식용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자체 개발한 예방 백신을 접종했지만 구제역 통제가 효과적으로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OIE는 현재 북한 당국과 백신 제공 등 구체적 지원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17일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보안군이 충돌해 6명이 숨졌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14일부터 시작된 리비아 반정부 시위는 시위대가 ‘분노의 날’로 규정한 이날까지 총 10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를 내며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이다. 리비아 야권 웹사이트 ‘리비아 알윰’은 16일 “리비아 동부 도시 알바이다에서 보안군과 혁명위원회 소속 민병대가 평화시위를 벌이던 청년들을 강제 해산하면서 실탄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피해 규모가 더 크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연대’는 이날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시위가 벌어진 도시의 건물 지붕 위에서 (보안군의) 조준 사격으로 시위대 1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지 신문 퀴르나에 따르면 리비아 보안당국 관계자는 “리비아 동부에서 2명이 숨졌고 내무부가 (그 책임을 물어) 알자발 알아크다르 지역의 보안책임자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퀴르나는 또 알바이다 지역에서 경찰이 시위 확산을 우려해 이 지역 상점을 강제로 폐쇄하면서 상점 주인들과 경찰 사이에서도 충돌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리비아 정부의 강경 진압에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은 리비아 정부에 반정부 시위에 대한 거친 대응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아랍권 민주화 혁명의 기운이 42년 독재 국가 리비아까지 번졌지만 리비아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은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리비아는 상대적으로 이 지역에서 부유해 시민들이 정부의 대규모 유혈 충돌을 감수하고 민중 봉기를 일으킬 확률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인근 국가에 비해 부의 불평등도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다. 리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7위 산유국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리비아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1만3800달러로 이집트(6200달러)보다 2.2배, 튀니지(9500달러)보다 1.5배가 높다. 이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십 년 독재 체제와 통제가 심한 언론 환경도 반정부 시위를 제약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카다피 원수는 정부에서 어떤 공식직책을 갖지 않고 혁명지도자 및 군 최고사령관으로 ‘혁명군사위원회’를 통해 리비아를 통치한다. 국방위원장 및 최고사령관의 직함을 갖고 국방위원회를 내세워 통치하는 북한 김정일식 시스템과 유사하다. 하지만 장기 1인 집권에 대한 불만이 내재한 데다 최근 높은 물가와 실업률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쌓인 상태여서 반정부 시위가 의외의 폭발력을 지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세계적인 휴대전화 생산업체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 모바일 운영체제(OS)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내년에 내놓겠다고 16일 밝혔다. 노키아가 11일 MS와의 제휴를 발표하자 전문가들은 빠르면 올해 말 ‘윈도폰7’을 탑재한 노키아폰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출시 시기가 내년으로 결정된 것. 노키아가 구글 대신 MS와 손잡는다고 발표했을 당시 노키아 주가는 14%나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노키아가 MS와 협력체제를 구축한다 해도 애플과 구글의 연대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제품 출시 시기가 시장의 관측보다 늦어지는 것도 노키아로서는 악재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는 15일 윈도폰7을 인터넷 친화형으로 발전시켜 스마트폰 전쟁에서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5일 미국 상원 빌딩에서 미 방송위원회(BBG) 주최로 ‘뉴미디어 혁명과 지구촌 참여(engagement)’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뉴미디어 혁명이 북한, 이란, 쿠바에서도 가능한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북한의 경우 쿠바, 이란보다 더 폐쇄적이어서 뉴미디어를 통한 변화는 힘들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진단이었다. 1980년대 북한 김일성대에서 유학한 북한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어떤 외국 발행물도 검열을 거치지 않고는 북한에 돌아다닐 수 없다”며 “위성수신 라디오를 소유하는 것도 정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내부의 인터넷 환경은 어떨까. 외부 세계와 연결된 인터넷은 없지만 북한 안에서만 연결되는 인트라넷은 많이 발달돼 있다. 인트라넷 주소를 갖고 있는 기관이 수천 개나 된다. 북한은 2004∼2007년 인트라넷용 광케이블을 주요 도시와 읍까지 연결했다. 평양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70∼80Mbps, 지방은 10Mbps로 한국의 2000년대 초반 수준이다. 북한에선 2000년대 중반까진 집에서 전화 모뎀을 이용해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해 채팅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06년 6월 평양의 한 누리꾼이 북한 최초 홈페이지 조선컴퓨터센터(컴퓨터 관련 국영연구소)의 ‘내나라’ 개설 10주년을 기념해 ‘평양체육관에서 농구경기를 하자’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자 실제로 300여 명이 체육관에 나타난 사건이 일어나면서 가정에서의 접속이 차단됐다. 모임을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에서 수백 명이, 그것도 중앙당 청사와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평양체육관에 순식간에 모인 것을 보고 당국은 즉시 인트라넷 집중검열을 벌였다. 채팅방이 남한 말투를 퍼뜨리는 온상이라는 것까지 알게 됐다. 이후 북한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PC방이 모두 폐쇄됐다. 현재 북한의 인트라넷은 기관을 통해서만 접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집집마다 컴퓨터를 보유하는 것은 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평양시 전체 가구의 20% 이상이 컴퓨터를 갖고 있으며 지방 주요 도시들에도 컴퓨터가 있는 집이 많다. 주로 펜티엄4급 중고 컴퓨터가 많이 보급돼 있다. 하지만 망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문서작성, 게임, 동영상 등 간단한 작업만 한다. 컴퓨터는 전략물자로 반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지만 중국을 통해 공공연하게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4일 수만 명의 시위대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였다. 시위대는 이란혁명 32주년 기념일인 11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예멘과 바레인에서도 각각 수천 명이 유혈시위를 벌였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아랍·중동 민주화의 태풍이 이집트에 이어 인접국을 잇달아 회오리 속에 몰아넣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발발하자마자 2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 당국은 대규모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마구 구타하고 최루가스와 페인트볼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친서방 국가인 튀니지와 친미 국가인 이집트의 정권 붕괴에 박수를 보내던 이란 정부는 반정부 인사들을 가택연금하고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미국과 서방사회는 즉각 시위대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란 테헤란에서 14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친서방 국가인 튀니지와 친미국가인 이집트의 정권 붕괴에 박수를 보내던 이란 정권을 크게 당혹시켰다. 이란에서는 2009년 6월 대선 직후 촉발된 부정선거 항의시위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해 12월에도 또다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정규군까지 동원돼 가까스로 진압했다.이란 당국에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 성공을 등에 업고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함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타도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자신과 마찰을 빚어온 전 총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총리직을 없애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이란 당국은 시위가 벌어지자마자 원천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강력히 대응했다. 14일 수만 명의 경찰과 민병대가 시위 예상지와 골목을 가로막고 시위대가 나타나는 대로 연행하거나 거리 진출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시위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야당 지도자 무사비와 메흐디 카루비는 가택연금당했고 휴대전화와 집전화도 차단당했다. 외신 기자들의 시위 현장 접근도 차단됐다.외신들은 15일 테헤란 거리는 전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야당 측이 1979년 발생한 이슬람 혁명 32주년이 되는 18일에 추가 시위를 벌이겠다고 집회 신청을 다시 내 긴장은 여전히 고조되고 있다.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집트 사태 초기의 주저하던 자세와는 달리 즉각 이란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은 이란인들의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확인서(testament)이자 이란 정권의 위선에 대한 기소장”이라며 “이란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앞서 13일 페르시아어 트위터를 개설했다.▼ 알제리-요르단-수단도 ‘反정부 시위 도미노’ ▼ “아랍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4일 신임 참모총장 취임식에서 최근 아랍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를 이같이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아랍권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예멘 바레인 알제리 등으로 거침없이 옮겨가고 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는 14일과 15일 이틀간 계속된 격렬한 반정부 시위로 시위대 2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시아파 무슬림이 주축이 된 시위대 수천 명은 종교 차별 철폐, 신헌법 제정, 총리 선출제 도입, 정치범 전원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경 대응했고 시위대도 투석전으로 맞섰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바레인 국왕은 15일 TV에 출연해 “시민 사망에 유감을 표하며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바레인 왕가는 최근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식량 보조금과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고 가구당 1000디나르(약 2600달러)를 지급했지만 국민적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직 왕가의 사퇴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 바레인의 이번 시위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고질적인 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레인은 인구의 70%가 시아파지만 정작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수니파다. 전문가들은 바레인의 시위가 확산되면 이웃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차별을 겪는 시아파가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15일 시위대 3000여 명이 사나대 캠퍼스에서 시내 중심부인 타흐리르 광장까지 행진하며 33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공교롭게 광장 명칭이 민주화의 성지로 부상한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과 똑같다. 이곳에서 시위대는 수천 명의 전투경찰 및 2000여 명의 친정부 시위대와 충돌해 몸싸움을 벌인 뒤 정오경 해산했다. 사나에서는 벌써 닷새째 같은 방식으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4일과 15일 이틀간 예멘의 옛 수도이자 제2의 도시인 타이즈에서도 5000명의 시민이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예멘 아덴 항을 관리하는 국영기업 노동자들도 반정부 시위에 파업으로 동참했다. 미국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의 기지가 있으며 예멘 정부도 최근 이 지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알카에다 소탕 작전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한편 19년간 시위가 금지돼 온 알제리에서도 12일 수천 명이 수도 알제에서 시위를 벌인 데 이어 18일 대규모 행진이 예고돼 있다. 요르단과 수단에서도 이미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거나 벌어질 예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하야 발표 하루 전인 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즉각 하야를 거부했을 때 두 아들인 알라와 가말이 주먹다짐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다고 이집트 국영신문 알 아크바르가 13일 보도했다. 당초 연설문 초안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군부에 권력을 즉각 이양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가말이 ‘9월까지 점진적으로 권력을 이양한다’고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대통령궁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녹화 도중에 알게 된 장남 알라는 “아버지의 말년을 명예롭게 하기는커녕 이런 방식으로 망쳐 놨다”며 가말을 심하게 나무랐고 주먹다짐 직전에 한 고위관료가 나서 겨우 말렸다는 것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연설은 반정부 시위대에 사실상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은 24시간도 못 견디고 수도 카이로를 탈출해야 했다. 알라와 가말은 본래 정적 사이다. 1990년대만 해도 장남 알라가 무바라크의 법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후 차남 가말이 부상하면서 알라를 눌렀다. 권력을 장악한 가말은 친구들에게 집권당 고위직을 나눠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대중적인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수도 평양시의 절반 이상을 황해북도로 편입시켜 행정구역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은 평안남도 소속이던 남포시를 특별시로 승격함으로써 행정구역을 기존 11개 시도(평양직할시와 나선특별시, 9개 도)에서 12개 시도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14일 북한의 노동당 및 내각 개편 내용을 담은 2011년판 북한 주요인물, 기관·단체별 인명집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을 공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평양시 남쪽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 승호구역 등을 황해북도로 편입해 평양시를 축소 개편했다”며 “이는 북한의 조선중앙연감 2009년판과 2010년판을 비교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평양시 면적은 기존 2113km²의 43% 수준으로 축소됐고, 인구는 50만 명 정도가 줄어든 250만 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北 “특별배급 부담 덜자” 이례적 수도 축소 ▼ 브라질 미얀마 등 일부 국가가 인구 과밀 등으로 수도를 옮긴 사례는 있지만 수도의 규모를 절반 이상 축소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평양 시민에게 지급되는 각종 특혜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크다”며 “평양의 규모를 줄여 선택된 사람들인 평양시민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평양의 혁명수호 특권층 평양은 이른바 북한의 핵심계층이 집중된 ‘그들만의 도시’로 불린다. 북한 정권은 핵심 지지계층이 몰려 사는 평양의 시민에게 특별 배급을 해왔다. 다른 지역과 달리 평양시민에게는 쌀의 비율을 훨씬 높게 배급하고 일반 주민이 쉽게 얻기 어려운 기름과 간장, 된장 등의 공급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평양의 구성원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정치적으로 조그만 문제라도 있으면 지방으로 추방 조치했다. 정권에 적대적이고 불순한 세력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혁명의 성지’를 지키겠다는 의도였다. 특히 1997년부터 평양시민에겐 ‘평양시민증’을 나눠줌으로써 다른 지역 주민과 차별해 왔다. 평양시는 북한 당국이 핵심 지지계층에 더 많은 배급과 교육기회를 보장해주고 이들의 충성심을 강요하는 정권수호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평양에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나타난 민주화시위가 발생할 수 없다.○ 인구 급증과 정권의 부담 그러나 최근 일단 평양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지방으로 나가려 하지 않아 인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정권에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늘어나는 평양시민에 대한 배급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평양에 거주하던 여성이 지방의 남성과 결혼하면 거주지를 지방으로 정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자 결국 강남군 중화군 등 농촌지역을 떼어내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강남군 중화군과 비슷한 수준의 농촌지역인 강동군을 여전히 평양시에 포함시킨 점이다. 대북 소식통은 “강동군도 평양시에서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는 농촌지역이지만 이곳은 이른바 ‘제2경제’라 불리는 군수경제가 몰려있는 곳이어서 별도의 대접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의 평양 행정구역 개편 북한 수도인 평양은 1946년 9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평안남도에서 분리돼 중구역 동구역 서구역 남구역 북구역 등 5개 구역을 포함하는 특별시로 승격됐다. 이후 평양의 행정구역 개편은 대부분 규모가 확대되는 방향이었다. 북한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행정구역 체계를 개편하면서 평양을 직할시로 변경했고 1956년에는 만경대구역과 서성구역을 추가로 신설했다. 1967년에는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으로 나눴고 1972년 임시 수도였던 평양을 북한의 공식 수도로 정했다. 1996년 평성시에서 일부 지역을 분리 흡수하면서 은정구역을 신설한 이래 최근까지 19개 구역과 4개 군, 7개 노동자구, 279개 동, 118개 리로 구성된 체제를 유지해왔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1일 이집트의 민주화 ‘메카’로 부상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전국적으로 최대 100만 명(AFP통신 추산)이 모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홍해 휴양지로 ‘피신’했지만, 즉각 퇴진을 거부한 ‘30년 장기집권자’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는 누그러들기는커녕 절정을 향해 폭발하듯 타올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 11일 오전 타흐리르 광장은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차곡차곡 메웠다. 금요예배 시작 시점인 이날 오후 2시경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발표된 이날 군의 성명은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고조시켰다. 시위대에 막 합류하려던 한 여성은 “우리는 군이 옳은 선택을 내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군은 언제나 무바라크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며 “과도정부를 이끌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한 40대 남성은 “우리는 무바라크가 대통령궁에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가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것이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떠나라’는 뜻의 아랍어 “이르할”을 소리 높여 외쳤다. AP통신은 시위대의 의지가 시위 발발 이래 가장 굳세어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를 무바라크 재임 30년 중 ‘최대 규모의 시위’로 만들겠다는 시위지도부의 다짐대로 인파가 몰려들어 광장에 배치된 군 탱크가 일찌감치 군중의 물결 속에 파묻혔다. 밤새 광장을 지킨 이들이 탱크의 캐터필러(무한궤도 바퀴)에 기대 쉬는 모습도 보였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 대한 불신도 가득했다. 전날 밤부터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30대 후반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무바라크가 술레이만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고 하지만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나 똑같은 사람”이라며 “오랫동안 이집트 정보국장으로 일한 술레이만이 더 폭력적이고 음흉하다”고 말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AL) 사무총장에 대한 평도 다르지 않았다. 이 교사는 “무사 사무총장도 무바라크 밑에서 10년 동안 외교장관을 한 사람”이라며 “그 역시 현 체제 인사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아침부터 탱크 4대가 지키는 대통령궁 정문 앞에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 무바라크 퇴진 구호를 외쳤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몇 블록 밖에 떨어져 있는 정부와 의회 청사 국영TV 방송국도 아침 일찍부터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700만 인구의 카이로 시내 곳곳은 시위대에 동조하는 자동차들이 울리는 경적으로 시끄러웠다. 한편 야권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반정부 시위로 위기에 처한 이집트 정권은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같다”며 “연립정부에 권력을 넘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분노의 함성으로 변한 희망의 축제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타흐리르 광장은 축제의 마당이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곧 하야를 발표하는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45분 무바라크 대통령이 TV 앞에 나섰다. 희망에 들떠 있던 시위대의 얼굴 표정이 어둡게 바뀌기까지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이 치러지는 9월까지 평화적 권력이양 절차를 밟아갈 것”이라고 언급하자 시위대의 희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17분간 진행된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술레이만 부통령이 TV에 출연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귀가와 일자리 복귀를 권고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신발을 쳐들어 TV를 향해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인근 국영TV 및 라디오 방송국 건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 이날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장교들이 속속 시위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흐메드 알리 샤우만 이집트군 소령은 11일 로이터통신과의 통화에서 “대위에서 중령에 이르는 중간급 장교 약 15명이 시민혁명에 동참했고, 이들은 곧 시위대를 상대로 연설할 것”이라면서 “우리의 목적은 시민들의 목적과 같다”고 강조했다. 카이로=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향후 이집트 시위의 향방은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은 최대 야권세력 무슬림형제단의 태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형제단은 1954년 자신들을 불법 조직으로 규정한 정부가 57년 만에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데 크게 고무되어 있다. 이번 기회를 앞으로 합법적으로 정치활동을 벌이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임 요구를 제외한 모든 문제에서 그들에게 최대한 양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8일 ‘4·6청년운동’ 같은 반정부 시위 청년 단체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협상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지만 형제단은 며칠 안에 2차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협상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형제단도 결과에 따라 협상을 끝낼 수도 있다고 정부를 압박하고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7일 형제단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 행정부와 형제단 간에 교류는 없었으며 형제단 조직 몇몇 리더의 언사와 상당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프리카 수단 남부에서 진행된 분리독립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98.83%가 독립에 찬성했다고 남수단 국민투표위원회가 7일 밝혔다. 이로써 남수단 독립이 확정됐다. 대외적인 독립국 선포식은 7월에 있을 예정이다. 남수단 독립은 역사와 종교, 문화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아프리카에 국경선을 그었던 제국주의 식민통치 잔재가 청산되고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초래했던 수단 내전이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표위원회는 지난달 9∼1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유효투표 383만7406표 가운데 찬성 379만2518표(98.83%), 반대 4만4888표(1.17%)였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국영 TV 연설에서 투표 결과를 수용하고 환영하며 남북 우호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살바 키이르 남수단 자치정부 대통령은 “남북 사이에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되는 느슨한 국경을 설치하고 치안 면에서도 북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남수단 독립을 환영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수단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연평도 인근으로 표류해 온 북한 주민 31명 중 대다수는 북한에서 ‘머슴 조개잡이꾼’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보인다. 머슴 조개잡이는 특히 북한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방식이다. ‘머슴’이란 표현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해봤자 외화벌이 회사의 배만 채워주고 당사자의 몫은 보잘것없어 북한 주민들이 자조적으로 붙인 것이다. ○ 서해를 적시는 조개잡이 여성의 눈물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서해 곳곳에는 조개를 중국과 한국에 수출하는 외화벌이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런 회사들은 수십 명씩 주민을 모집한다. 성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미성년자나 노인, 여성 수만 명이 바닷가에 몰려든다. 대다수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다.7일 복수의 탈북자와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엔 농사지은 양곡을 군량미로 빼앗긴 농민들이 합세하고 있다고 한다. 조개가 주요 생산물인 서해와 달리 동해는 오징어가 주산물이다. 서해에 조개를 잡아주는 머슴 조개잡이꾼들이 있다면 동해에는 오징어를 잡아주고 삯을 받는 ‘삯발이’들이 있다. 삯발이는 일 자체가 힘들어 여성들을 잘 뽑지 않는다. 동해의 삯발이가 7∼10월 오징어철에 한정된다면 서해의 조개잡이는 1년 내내 이어진다. 조개잡이는 보통 30명 규모로 진행된다. 머슴 조개잡이꾼이나 삯발이들에게는 정해진 휴일이 없다. 바다날씨가 궂으면 휴일인 셈이다.본격적인 조개잡이철은 3∼10월이다. 겨울에도 조개잡이를 하지만 다리가 길고 껍데기가 얇은 자그마한 칠게도 많이 잡는다. 밀물 때 배를 타고 나오는 이유는 육지에서 멀어져야 조개를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대합 모시조개 우렁이 소라 등을 캐낸다. 잡은 양에 따라 밀가루나 기름과 같은 식품을 분배받기 때문이다. 장화를 살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여성들이 겨울에 맨발로 갯벌을 뛰어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많이 잡는 사람은 한 달에 밀가루 세 포대(75kg)를 벌기도 하지만 한 포대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기름을 절약하기 위해 한 번 배를 타고 나오면 일주일씩 바다에 머물기 일쑤다. 이 때문에 머슴 조개잡이꾼들은 조개 캐는 공구 외에도 갈아입을 옷과 식량 냄비 담요 땔나무를 준비해 배에 오른다. 서해안 해변이나 무인도에는 비닐박막으로 임시 움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조개를 잡아 모았다가 시장에 가서 판다. 요즘 한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조개 중에는 이렇게 생산되는 북한산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목숨을 내건 조개잡이조개잡이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초보자들이 조개잡이에 정신이 팔렸다가 갑자기 밀려든 밀물에 빠져 죽는 일도 흔하다. 서로를 잘 몰라 누가 죽어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낡은 배라도 뜨기만 하면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사고가 잦다. 올 1월에도 북한 중앙통신은 “조개잡이에 나갔다 표류했던 평북 곽산군 주민 10여 명을 김정일 장군님이 보내준 공군 비행기가 구했다”고 선전했다.2008년에도 음력설 다음 날인 2월 8일에 북한 주민 22명이 탄 조개잡이 배가 남쪽에 표류해 온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구조 13시간 만에 전격 북송된 이들이 공개 처형됐다고 전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보위부에서 닷새 동안 조사받고 일상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표류한 주민들도 북한에 돌아가면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뒤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배를 타기 전에 반드시 신원을 증명해야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남은 가족의 생명이 위험하다.주성하 기자 (김일성대 졸업) zsh75@donga.com}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천연가스를 공급해주는 수송관이 5일 폭발해 양국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됐다. 폭발 원인을 놓고 이집트천연가스사는 가스누출에 따른 사고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이집트-이스라엘 간의 협력관계에 불만을 품은 테러세력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시위사태로 무바라크 정권 30년간 유지돼온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안정된 관계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을 놓고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폭발 지점은 이집트 수에즈운하 입구에서 출발한 천연가스 수송관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인 시나이 반도 북부의 엘 아리시다. 이번 폭발이 이스라엘 쪽 수송관에서 발생했는지 요르단 쪽 수송관에서 발생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폭발이 발생하면 두 나라를 향한 가스 수송은 자동으로 차단된다. 이 수송관은 작년 7월에도 테러공격으로 폭발한 전례가 있다.이 수송관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공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정부는 자국 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2005년에 15년간 매년 17억 m³의 천연가스를 이스라엘에 판매하기로 합의했고 2008년부터 실행에 옮겼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집트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특히 이집트 정부가 시세보다 40% 이상 낮은 가격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면서 반발 여론은 더욱 거셌다.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현실적 온건주의를 표방한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 정권은 1978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1980년 국교를 수립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아랍연맹에서 제명당했고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암살당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을 계속 유지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차기 이집트 정부가 어떤 성격을 띨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대(對)아랍 정책의 새판 짜기에 돌입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백악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등이 총동원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미국의 국익과 중동질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워싱턴 전역의 많은 빌딩에서 총체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집트 반정부 세력의 이념적 종교적 정체성을 종합해보면 이번 시위사태가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겨냥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차기 이집트 정부가 노골적인 반미(反美) 성향을 보이며 중동정책을 근저부터 뒤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포스트 무바라크 권력’을 놓고 각축을 벌일 것으로 유력시되는 3개 세력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75)을 내세운 군부세력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69)을 구심점으로 한 반정부 시위 주도세력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무슬림형제단 등이다. 이 중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운 군부세력의 재집권은 미국과 무바라크 대통령이 선호하는 카드다. 이집트의 친미 노선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위대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심복인 술레이만 부통령의 퇴진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술레이만 부통령 카드가 통하지 않을 경우 군부가 사미 아난 참모총장(63)을 대안인물로 내세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아난 참모총장은 청렴한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을뿐더러 미국과의 관계도 매우 좋은 편이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이 집권할 경우에도 이집트의 대미, 대중동 정책은 상당 부분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IAEA 사무총장 재직 시 반미 성향을 보였던 그는 2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차기 이집트 정권이 반미 정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할 경우엔 대내외 정책이 근본부터 바뀔 수도 있지만 역학구도상 이들이 단독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함마드 바디에 최고지도자(68)가 이끌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불법단체로 공식 활동이 금지된 속에서도 강력한 조직력으로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으로 부상했다. 2005년에는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체 의회 의석의 20%를 차지했다. 비록 알카에다와 같은 급진 원리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들의 집권은 군부와 미국에는 최악의 결과다. 하지만 이 조직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20∼40%에 불과해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으며 군부의 배척과 서방사회의 강한 견제도 장벽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내각 해산을 천명한 지 이틀 만인 31일 새 내각을 발표했지만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는 1일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고 카이로에서 ‘100만인 행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시위가 7일째 확산일로인 가운데 군부와 내각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사임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그의 30년 권좌가 백척간두로 내몰리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 인터넷판은 지난달 30일 이집트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권력 이양이 불가피하다고 권고했다. 그가 ‘점잖게’ 물러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29일 임명한 최측근이다.하지만 현지 언론인은 31일 내무부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앞으로 3일 이내에 시위를 완전히 진압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진압이 이뤄질 경우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야권의 행보도 숨 가쁘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집권당인 국민민주당을 배제한 거국정부 구성 논의를 시작했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은 30일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집결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우리는 이 정권이 퇴진해 새로운 이집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길 원한다”고 연설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타흐리르 광장에 31일 오후 5시(한국 시간 1일 0시) 현재 15만 명이 모였다고 전했다.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최근 개각은 시발점에 불과하다”며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민주체제로 전환(transition)하는 것이 이집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과도정부가 9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 국가를 잘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1일 보도했다.최근 일주일간 이어진 시위로 시민과 경찰 등 120∼150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카이로=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미국에 마약을 반입하려는 멕시코 마약갱단의 수법이 날로 다양해지는 가운데 급기야 중세시대에 사용됐던 방식의 투석기를 이용해 국경 너머로 마약을 날려 보내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멕시코 국방부는 29일 “전날 보안군이 미국 애리조나 주 더글러스 남쪽의 멕시코 국경도시인 아과프리에타의 한 거리에서 투석기와 비슷한 장치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보안군은 21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높이 3.5m의 금속 투석기를 찾아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버려진 투석기 주변에선 소량의 마리화나도 발견됐다. 이번 주 미국 언론들은 멕시코 갱단 소속원들이 국경에서 투석기를 이용해 마약 꾸러미를 미국 쪽으로 쏘아 보내는 장면이 포착된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동안 특수 개조차량, 무선 조종 비행기, 지하 땅굴 등 다양한 마약밀매 방법이 당국에 적발됐으나 투석기를 이용한 마약반출 수법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24일 자살 폭탄테러를 자행한 범인의 신원이 확인됐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29일 “사망자 35명과 부상자 180여 명을 낸 국제공항 자폭테러 공격의 범인은 북(北)캅카스 지역 자치공화국 출신의 20세 남성으로 확인됐다. 현재 테러 기획자들과 공범을 색출해 검거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테러범이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2014년 겨울올림픽 등을 앞두고 외국인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국제선 입국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연방수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모스크바 동남쪽 외곽의 한 여관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은 또 다른 북캅카스 테러조직의 소행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체첸, 다게스탄 등 7개의 이슬람권 자치공화국이 있는 러시아 남부 북캅카스 지역에서는 체첸 반군을 중심으로 격렬한 분리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