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정신적 족쇄’ 끊는 시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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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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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새끼 코끼리 발목에 족쇄를 채워 놓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코끼리는 묶인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묶여 있음에 익숙해진 코끼리는 발목의 끈이 살짝 풀려 있어도 멀리 갈 생각을 못한다. 스스로 정신적 감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행동이 사람에게도 나타난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정보혁명 시대인 21세기에도 그럴까.

24일 시리아 남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굳건해 보이는 정신적 감옥도 얼마든지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리아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철망에 갇힌 코끼리’ 정도로 자조했다.

시리아는 인구 150명 중 한 명꼴로 비밀경찰인 ‘무카바라트’ 요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시리아 당국은 여러 개의 정보조직을 가동하며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한다. 그래서 시리아에는 ‘남이 웃을 때 같이 웃고 남이 박수 치면 같이 박수 치라’는 말이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기에 바쁘다. 태어나서부터 집권자에 대한 찬양을 세뇌 받은 영향도 크지만 잘못 말했다간 어딘가에서 비밀경찰이 나타나 끌고 가기 십상이다.

시리아에 집단반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혹독한 피의 대가를 치렀다. 1982년 하마 시에서 일어난 무슬림형제단의 반정부 시위 때는 무려 2만 명이 학살됐다. 2004년의 쿠르드족이 중심이 된 반란도 유혈 진압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리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운명을 체념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웃 중동국가들에 들불처럼 번져가는 민주혁명은 시리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주었을 것이다. 담장에 집권자를 겨냥한 낙서를 한 어린이들을 체포한 것이 도화선이 되면서 18일 남쪽 변경도시 다라에서 주민 시위가 벌어졌고 급기야 24일엔 시위대가 2만 명으로 불어났다. 진압 과정에서 100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이번엔 시리아에서의 피의 대가가 헛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시위대를 학살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지켜본 시리아 대통령은 24일 48년간 지속된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정치활동과 정당 정치 참여도 약속했다.

시리아 국민이 이번에도 끈을 완전히 풀어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의지와 힘이 있으면 자유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달았을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지구촌이 실시간으로 연결된 21세기엔 아무리 엄혹한 비밀경찰 체제로도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가둬둘 수 없음을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가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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