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8.8강진-쓰나미 대재앙]‘진앙’ 日동북부지역 아비규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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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30km에 늘어선 주택 1800여채 모조리 부서져
전력질주 탈출 차량들, 쓰나미가 뒤쫓아와 덮쳐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11일 일본은 동시다발의 무차별 폭격을 받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이번 지진의 진앙인 일본 동북부 지역은 주요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도심이 물에 잠기는 등 최악의 재난 상황이 연출됐다. 사상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돌고 있는 가운데 사망자와 실종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 늘어나는 사망-실종

지진에 이은 최고 높이 10m의 쓰나미에 휩쓸린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 와카바야시(若林) 구 아라하마(荒濱) 해변가에서는 익사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 200∼300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일본 기상청은 이날 지진 발생 직후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고 동북부 태평양 연안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령을 내렸지만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시민들이 변을 당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이 지역에서는 1200가구가 쓰나미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기 현에서는 조선소 근로자 100명이 탄 배가 쓰나미에 휩쓸리며 실종돼 일본 해상보안청이 수색작업에 나섰다. NHK방송은 미야기 현 경찰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배 실종 사실을 전하며 현재까지 배의 행방과 탑승자 생존 여부 등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배는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의 한 조선소가 항구에 정박시켜 놓고 제작하던 것이다. 또 JR 센세키(仙石) 선 노비루(野蒜) 역 부근에서 연락이 끊겼던 열차 2대 중 1대는 탈선했고 나머지 1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미야기 현 경찰이 전했다.

○ 센다이 참상

센다이 시와 인근 나토리(名取)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토리 강 주변 도로에는 밀려오는 바닷물을 피하려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지만 평지로 내려선 물결의 이동속도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가용보다 빨랐다. 미처 피하지 못한 차량이 그대로 바닷물로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이 NHK를 통해 생중계됐다. 일본 전문가들은 “쓰나미가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규모”라고 말했다. 센다이 시 교외에서도 대피하는 차의 뒤를 엄청난 기세의 물결이 쫓아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센다이 시 도심 빌딩 곳곳에선 화재가 잇따르며 검은 연기가 주변으로 퍼졌고 센다이 만에 가까운 센다이 공항에서는 승객들이 공항 빌딩 옥상으로 대피한 모습이 방송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센다이 시 중심가 도로에는 깨진 유리가 흩어졌고 건물에서 뛰쳐나온 이들로 혼잡을 이뤘다. 시민들은 “불과 이틀 전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또 무슨 일이냐”며 얼굴이 새파래진 채 휴대전화로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부둥켜안거나 길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대규모 정전으로 100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중심가 빌딩 외부의 등도 꺼졌으며 신호등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간선도로는 대규모 정체를 이뤘다. 센다이 시내 나카노초등학교 옥상에는 시민 600여 명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뒤 미야기 현 청사의 직원들이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가 하면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복도에 물이 넘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센다이 시에서는 시민 6만∼7만 명이 200여 곳의 대피소로 피신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 인구 4만 명 어촌, 300채 가옥 파손

미야기 현 인구 7만4000여 명의 게센누마(氣仙沼) 시에서는 시가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불이 나 수천 채의 가옥이 불탔으며 많은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고 NHK방송이 이날 육상자위대 도호쿠(東北)방면대를 인용해 보도했다. 거대한 불기둥이 곳곳에서 치솟았고 검은 연기가 온 도시를 뒤덮였다. 화염의 폭과 길이가 수 km에 달해 마치 산불이 난 듯했다. 게센누마코요(氣仙沼向洋)고등학교는 건물 4층까지 물에 잠긴 가운데 미처 대피하지 못한 교직원 50여 명이 건물에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기 현 남쪽 후쿠시마(福島) 현에도 높이 7m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埼玉) 현의 에도가와(江戶川) 제방이 50m가량 무너져 역류한 바닷물이 주변을 휩쓸었다. AFP통신은 교도통신을 인용해 후쿠시마 현의 한 댐이 붕괴돼 수많은 가옥이 쓸려 내려갔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현 북부 해안가 30km 거리에 늘어선 주택 1800여 채가 붕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기 현 북쪽 이와테(巖手) 현 오후나토(大船渡) 항에도 최고 10m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인구 4만 명의 어촌마을인 오후나토에서는 가옥 300여 채가 파괴됐다. 1960년에도 막심한 쓰나미 피해를 보았던 이 마을에 다시 한번 재앙이 닥친 것이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는 이날 오후 10시 현재 10명이 숨지고 고등학생 23명을 비롯한 48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테 현 미야코(宮古) 시의 양로원 ‘케빈 하우스’에서는 노인과 직원 수십 명이 쓰나미에 휘말려 실종됐다.

한편 방위성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진 피해 지역과 가까운 자위대 부대에 비상 대기 명령을 내렸고 출동 요청을 한 미야기 현 등에 잇달아 병력 8000명을 투입했다.

○ 트위터 통해 비극 전파

트위터를 통해서도 동북지역의 참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날 오후부터 전화가 대부분 불통돼 전파력이 빠른 단문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 센다이는 현재 연안 지역과 항만 주변 논밭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 일대가 물바다로 변한 상황이며 공항도 활주로까지 침수돼 폐쇄됐다. “해일이 센다이 시 밭을 삼키고 있다”는 내용은 물론이고 “직계 가족의 안부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등 극도로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글도 많다.

센다이 시 홈페이지는 현재 접속 불능 상태다. 센다이 역은 폐쇄됐고 육교는 균열이 생겨 붕괴 위험이 있으며 전기와 가스, 수도 공급도 중단되는 등 현지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글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ID가 ‘harukaruha44’인 일본인 트위터 이용자는 “센다이가 암흑이다. 기차역이 캄캄하다. 택시도 자동차도 백화점도…(깜깜하다)”란 짧은 글로 충격을 대신했다. ‘xo7maxo’란 트위터 이용자 역시 “사람들은 정전이라서 지금 정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헬리콥터랑 사이렌 소리, 비명밖에 안 들린다”고 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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