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세계와의 공존[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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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으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떠드는 소리가 한 시간 간격으로 반복됐다. 나에게는 정확한 시계였다. 종이 울리면 복도를 가득 메우는 학생들, 첫 수업이 끝나고 수강 신청을 변경하기 위해 신청서를 들고 연구실로 찾아오는 학생들. 그런데 이제는 비대면으로 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텅 빈 학교. 모든 연락을 e메일로 하고 서류 처리 역시 e메일로 한다. 강의 역시 동영상을 통해 당분간 진행해야 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 중 하나인 관성의 법칙은 가장 위험하지 않은 법칙 중 하나다. 외부로부터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법칙을 말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고 안심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비합리적일 수 있고 더딘 일상이었지만, 일상을 계속 유지하려는 법칙이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요즘과 같이 관성이 깨진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떤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낼까. 관성이 외부의 힘에 의해 깨지면 새로운 물리적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두려워하는 미래가 나타날 수도 있고, 발전적인 미래가 찾아올 수도 있다. 감성적으로 과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작은 나노 사이즈의 바이러스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이나 박테리아 등은 세포로 구성돼 있다. 세포의 내부에는 산성을 띤 핵산이 있는데, 데옥시리보핵산(DNA)과 리보핵산(RNA)이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핵산이 있다. 바이러스는 1892년 담배 잎사귀에 반점을 만드는 모자이크병의 병원체로 발견됐다. 이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중간 단계인 바이러스는 핵산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존재다. 오직 숙주 세포 내에서만 번식한다.

신종 코로나 같은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잘 일어나는 특성이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유전자의 자연 변형이 생겨난다. 이런 바이러스를 차단하려면 바이러스의 정확한 유전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바이러스를 탐지하는 데에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라고 하는 DNA 증폭 기술이 이용된다. 이 기술은 1986년 캐리 멀리스가 개발했고 그는 199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나노 크기의 바이러스 세계는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다. 마치 나노의 세계로 설계된 반도체처럼.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바이러스의 세계와 공존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분석을 통한 과학적 힘이다.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다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당분간 인터넷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만날 것이다. 신입생의 경우는 아직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한 상태다. 이 시기가 지나면 교실이나 복도, 운동장에서 마주치는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봄날을 위해, 따듯한 햇살은 우리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코로나19#나노 세계#과학적 힘#공동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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