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깬 과학자들[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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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지 2주째다. 처음엔 시간도 많이 들고 어색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온라인 강의를 하다 보니 하나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학생들이 시간을 두고 더 꼼꼼히 강의를 들었다. 그만큼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또 질문이 더 많아졌다. 질문하는 학생들의 이름이 눈에 금방 들어왔다. 강의실이었다면 강의에 묻혀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들을 이제는 많은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번의 온라인 강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분명 더 좋은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미래의 교육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만 했지, 이렇게 생생한 경험을 통해 새롭고 구체적인 미래를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서 미래의 갈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한강변에 살고 있어 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학교에 금방 도착한다. 한강변의 새롭고 멋진 풍경을 발견한 것은 또 다른 큰 선물이다.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고 시도해 본다는 것, 이는 분명 기회다. 연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시도, 당연해서 뒤집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어쩌면 여기에 뜻밖의 질문과 답이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분명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 생명의 정보가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전달되며 그 역과정은 없다는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센트럴 도그마)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생물학자 하워드 테민 박사와 화학자 데이비드 볼티모어 박사는 ‘RNA 바이러스’의 경우 RNA로부터 DNA가 만들어지며, RNA가 세포의 유전물질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도 RNA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그 당시에는 센트럴 도그마가 워낙 굳건했기 때문에 이 두 과학자의 새로운 주장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테민 박사와 볼티모어 박사는 각자의 연구를 통해 RNA 바이러스에는 RNA로부터 DNA를 합성할 수 있는 특별한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이 결과는 국제 저널 ‘네이처’에 나란히 발표됐으며, 이 발견으로 바이러스 연구와 암 연구에 새로운 창이 열렸다. 1975년 두 과학자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학계의 금기를 깨는 두 과학자의 연구가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 강의, 삶의 방식, 삶의 목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도 더 많아지고 책을 보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역시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듯싶다. 이 바이러스가 진정된 이후의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물리학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가역적인 세상이다. 절대 과거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현실이 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센트럴 도그마#하워드 테민#데이비드 볼티모어#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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