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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의 대부’ 천국무대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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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의 대부’ 천국무대로 떠나다

김재희 기자 입력 2020-03-11 03:00수정 2020-03-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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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윤 美 LA서 별세
NBC ‘투나이트 쇼’ 아시아인 첫 출연‘… 미국을 웃긴 최초의 한국인’ 별명
1989년 귀국해 ‘자니윤쇼’ 진행… 시신은 대학 메디컬센터에 기증
동양인 최초로 미국 NBC 인기 토크쇼 ‘투나이트 쇼’에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은 자니 윤은 201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생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으로 오래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동양인 최초로 미국 인기 TV 토크쇼인 ‘투나이트 쇼’에 출연하는 등 풍자 위주의 스탠드업 코미디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한 ‘코미디계 대부’ 자니 윤(본명 윤종승)이 8일 오전 4시(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 성악과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의 다양한 코미디 클럽에서 무명 생활을 보내다 1977년 당시 최고 인기 TV 프로그램인 NBC ‘투나이트 쇼’의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발탁돼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카슨의 눈에 든 그는 이후 34차례 고정 출연하며 ‘미국을 웃긴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기에 힘입어 1982년에는 ‘내 이름은 브루스(They Call Me Bruce?)’라는 코미디 액션 영화의 주연을 맡아 약 17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1989년 귀국한 윤 씨는 그해 3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KBS에서 한국 방송사로는 처음으로 진행자 이름을 내건 미국식 토크쇼 ‘자니 윤 쇼’를 진행했다. 1991년에는 SBS에서 ‘자니 윤 이야기쇼’를 1년간 방영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통용되던 사회 고위층 행태 풍자, 성적인 농담 등에 대해 ‘퇴폐적 방송’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 토크쇼는 1년여 만에 폐지됐다.


고인은 2011년 국내 방송에 출연해 “당시에는 방송에서 제한하는 것이 많았다.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며 “내가 개그를 하면 제작진은 시말서를 써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2002년 iTV의 ‘자니 윤의 왓츠업’으로 다시 토크쇼를 맡았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고인은 2009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은 우리가 듣고 웃고 배울 점이 있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줘야 하는데 그런 프로를 찾기 어렵다”며 “과장된 행동이 많고 (연예인의) 신변잡기 털어놓기가 사회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당시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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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고인은 2014년 박근혜 정부 초기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지만 ‘낙하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6년 임기 종료를 앞두고 뇌출혈로 쓰러져 미국에서 치료와 요양 생활을 했다. 말년에는 치매를 앓아 로스앤젤레스의 요양시설인 헌팅턴 양로센터에서 지내다 이달 4일 혈압 저하 등으로 입원했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메디컬센터에 기증하기로 했다. 윤 씨는 2010년 이혼했고 자녀는 없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자니 윤#토크쇼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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