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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내내 평안하시길…” 추사가 아내에게 쓴 ‘극존칭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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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내내 평안하시길…” 추사가 아내에게 쓴 ‘극존칭 편지’

조종엽 기자 입력 2020-02-29 03:00수정 2020-02-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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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정창권 지음/304쪽·1만7000원·돌베개
“저번 인편에 적으신 편지 보고 든든하오며, 그 사이에 인편이 간혹 있사오되 글씨 쓰는 일이 매우 힘들어 못했으니 죄가 많사옵니다. 오죽이나 꾸짖어 계시오리이까? …호방이 내려가기에 바빠서 이내 그치오며, 내내 평안하시길 바라옵니다.”

서울에 있는 32세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18년 4월 대구에 있는 가족에게 쓴 한글 편지다. 답장을 못 보냈다고 ‘죄가 많다’며 자책하는 걸 보면 수신자는 아버지나 어머니였을까. 웬걸, 받는 사람은 아내 예안 이 씨다. 김정희는 아내에게 항상 극존칭으로 편지를 썼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1766∼1837)도 마찬가지였다.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 85통을 현대어로 옮기고 해설한 책이다. 이 편지들은 조선에서 남존여비 사상이 극심했고, 집안일은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통념을 깬다. 추사 집안의 남성들은 안살림과 노비 관리, 제사나 혼인 등 많은 일을 해냈음이 여러 편지에서 드러난다. 남자들은 의복과 음식을 잘 알았고, 옷감이나 반찬거리를 뒷바라지했으며, 직접 살림을 하기도 했다.


김노경은 이런 꼼꼼한 편지도 썼다. “일전에 창녕(둘째 아들 김명희)의 생일에 만두를 하여 먹으니, 메밀은 먹물을 들여 놓은 것 같고 침채(김치)가 없어 변변히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인편에 메밀가루를 조금 얻어 보내고 메밀국수 만드는 법을 기별하면 다시 만들어보겠지만 잘될지 모르겠다. 갓과 우거지를 작년에도 많이 보내어 겨울을 났거니와 올해도 조금 넉넉히 얻어 보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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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부엌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금기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출가한 딸이 자주 친정에 가는 등 가깝게 지냈던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초빙교수로 역사 속 소외 계층에 대한 책을 주로 써 온 저자는 “조선 후기 남성은 여성과 협력해 각종 집안일을 일상적으로 했다”면서 “권력의 향유자라기보다 집안의 대표자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정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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