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더 늘려봐야 실제 은퇴나이는 ‘49.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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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22일 0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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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2년부터 사실상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평생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가 50세가 채 되지 않는 상황 속에 정년만 늘려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똑같이 퇴직하고서도 연금수령만 늦어지는 부작용만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직업 재훈련’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싶도록 고령자들의 노동 생산성을 갱신해주자는 것이다. 당장 정년연장 논의를 꺼내기 어려운 정부 입장에서 정년 법제화를 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년연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급속도의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데 대한 대응책들이 담겼다.

특히 정부는 고용연장 방안의 일환으로 2022년부터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계속고용제도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대신 기업이 Δ재고용 Δ정년연장 Δ정년폐지 등 다영한 고용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정년연장과 계속연장제도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지만 기업에 고용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년연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정년 60세 더 늘려봐야 실제 은퇴나이는 49.1세

문제는 이같은 정년연장이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2016~2017년에 걸쳐 사업장들이 정년을 아예 없애거나 혹은 60세 이상으로 설정하도록 법제화된 후 대다수의 근로자들에게는 60세 이상으로의 정년연장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층(55~64세) 인구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연령’은 2006년 평균 50.3세에서 2017년 49.1세로 계속 낮아졌다. 정년이 60세까지 연장됐지만 실질적 은퇴연령은 더 빨라진 셈이다. 이는 과거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있으면 도둑)란 단어가 유행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정년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민간기업들은 공공부문과 달리 산업의 등락에 따라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겪기 때문이기도 한다. 산업 수축기에는 인력감축이 이뤄지기 마련이고, 생산성이 낮아진 인력들은 꼭 나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에 직장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년 법제화로 가장 혜택을 보는 건 공공부문이고, 민간부문 중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곳을 뺀 상당수는 구조조정을 통해 사실상의 인력조정을 거치게 된다”며 “구조조정을 통해 사람들이 나가니까 정년연장이 법으로 있어도 그 혜택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업은 사실 (근로자를) 자르려면 얼마든지 자를 수 있다. 정년 연장은 사실 기업 입장에 큰 부담이 아니다”라며 “정년연장이란 오히려 국민연금을 깎고 연금지급시기를 늦추기 위해 도입된 면이 있다. 다수의 중산층은 연급지급시기만 늦춰지고 정년연장 혜택은 못본다”고 말했다.

◇법적 강제 대신 계속 ‘쓸모있는 인간’ 만들기

사실상 효과가 없는 강제적 ‘정년 연장’ 대신 실질적으로 은퇴연령을 늦추는 방법으로 ‘직업 재훈련’이 꼽힌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고령층에게 새로운 기술을 자꾸 배우게 함으로서 기업에서도 계속 데리고 있고 싶은 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독립조사기관인 IZA 노동문제연구소(IZA Institute of Labor Economics)는 2015년 ‘훈련 접근성, 상호성, 기대 은퇴연령(Training access, reciprocity, and expected retirement age)’ 보고서를 통해 기업에서 근로자에 대한 직업교육을 실시할수록 근로자들의 은퇴연령은 더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고용주들에 따르면 직업훈련 실시 여부는 근로자들의 기대 은퇴연령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며 “직업훈련은 고령 근로자들에게 일에 대한 동기를 불어 넣어주고 결과적으로 은퇴연령을 늦추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고령 근로자를 재훈련할 경우 근로자의 근로동기 뿐 아니라 기업의 고용유지 동기도 강해진다고 강조한다.

성 교수는 “기술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근로자의 생산성을 유지시켜 기업이 자발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교육과 직업훈련이 정년 연장에 있어 ‘정년 법제화’보다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이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훈련할 경우 투자에 대한 회수를 해야하니까 근로자들이 오래 일할수록 기업 입장에서 좋다”며 “얼마전 디스플레이 업계 트렌드 변화로 LCD라인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경우도 기술 재교육을 통해 대규모 조정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직업 재교육을 오롯이 기업이 맡을지, 정부가 얼마나 지원해줄지가 문제로 남는다. 기업에는 동기가 적은 반면 정부가 주도할 경우 기업의 수요를 맞추지 못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직업 재훈련은 투자한 기업이 이득을 회수하기가 어렵다. 그게 기업이 직업훈련에 잘 투자하지 않는 이유”라며 “그래서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기업의 인력 수요와 맞느냐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년을 법제화하는 것은 인위적 시장가격 통제(최저임금)와 같은 부작용을 만들 수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업이 오롯이 근로자의 생산성을 근거로 임금·고용을 결정하도록 하는 동시에 근로자의 생산성을 키워주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임금이 근로자의 생산성에 대한 보상이라고 가정한다면, 생산성이 낮은 사람은 임금을 조금 낮게 주고 고용하는 게 가능하다”며 “그런데 현실은 나이가 많을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서열제를 취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고령자를 데리고 있는게 손해니까 법적 의무만 끝나면 바로 내보내려고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위적으로 정년을 강제하기보다 기업이 실제로 뽑고 싶은 인력·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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