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경기 7시간 뛴 5세트의 사나이… “붙어보자, 흙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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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US오픈 2회전 0-2서 3-2
세계 34위와 3시간22분 명승부… 최종 세트 매치포인트 위기도 극복
2연속 뒤집기 함성으로 코트 달궈, ATP “부상 완전 회복됐다는 신호”
9월 1일 우승후보 나달과 16강 다퉈

정현이 30일 US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두 팔을 치켜든 채 기뻐하고 있다. 세트스코어 0-2에서 3-2로 뒤집은 대역전극을 지켜본 관중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테니스코리아 제공
정현이 30일 US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두 팔을 치켜든 채 기뻐하고 있다. 세트스코어 0-2에서 3-2로 뒤집은 대역전극을 지켜본 관중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테니스코리아 제공
정현(23·한국체대·170위)이 포핸드로 받아넘긴 공이 엔드라인을 넘겼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36·스페인·34위)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매치포인트. 백전노장 베르다스코의 눈앞에 승리가 어른거렸다. 최종 5세트 6-5. 40-30으로 앞섰기에 한 포인트면 승리였다. 3세트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경기가 생각보다 길어졌고, 벼랑 끝에 몰린 상대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지만 승리가 코앞이라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켰다.

오직 정현만이 포기하지 않은 경기였다. 차분히 서브를 넣었고 7차례 랠리 끝에 베르다스코가 실책을 했다. 체력보다 경험이 강점인 베테랑의 투혼은 거기까지였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이 30일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테니스센터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2회전에서 3시간 22분의 혈투 끝에 베르다스코를 3-2(1-6, 2-6, 7-5, 6-3, 7-6)로 눌렀다. 1, 2세트를 잇달아 진 뒤에도, 5세트 상대 매치포인트에도 정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1회전에서 3시간 36분 만에 역전승을 거뒀던 정현에게는 어떤 위기도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경기 초반 몸이 무거워 보였던 정현은 스트로크와 서브에서 밀리며 1, 2세트를 큰 점수 차로 내줬다. 3세트에서 베르다스코가 실책 21개를 쏟아내며 흔들린 틈을 타 7-5로 세트를 가져온 정현은 4세트 3-3에서 내리 세 게임을 따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5세트에서는 1-4까지 끌려가며 고전했지만 침착하게 6-6을 만든 뒤 타이브레이크에서 5포인트를 연달아 따내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현은 서브에이스에서 8-10, 공격 성공 횟수에서 41-49로 밀렸지만 실책은 52-65로 적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용국 NH농협은행 단장은 “정현이 좋은 리턴과 끈질긴 랠리를 앞세워 경기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베테랑 베르다스코를 체력과 정신력에서 눌렀다”고 평가했다.

올해 US오픈은 유독 5세트 경기가 많다. 2라운드까지 23경기가 나와 호주오픈(24회), 프랑스오픈(24회), 윔블던(21회)에 비해 훨씬 많은 5세트 접전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ATP투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정현은 1, 2회전 내리 5세트 경기를 치르고 3회전에 진출한 5명 중 하나다. 그가 2경기를 7시간 가까이 뛰면서도 3회전에 올랐다는 사실은 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정현은 “베르다스코와 같은 베테랑 선수에게 0-2로 지다 역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걸 해낸 나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그가 메이저 대회 3회전(32강)에 진출한 것은 2017년 프랑스오픈, 2018년 호주오픈에 이어 3번째다. 정현은 3회전 진출로 상금 16만3000달러(약 1억9700만 원)를 확보했다.

정현은 9월 1일 세계 2위인 우승 후보 라파엘 나달(33·스페인·사진)과 16강 진출을 다툰다. 나달은 서나시 코키나키스(23·호주·203위)가 기권해 체력을 아낀 채 3회전에 올랐다. 열 살 때인 2006년 서울에서 열린 나달과 로저 페더러의 시범경기에서 볼 보이를 했던 정현은 “많은 분들이 나달과의 경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 준비해 기대에 부응하겠다. 경기는 주말에 있으니 한국에 계신 팬들이 좀 더 편안하게 시청하시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정현은 지금까지 나달과 두 차례 만나 모두 졌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처음이다. 박용국 단장은 “나달은 세계 최강의 수비력을 가진 선수다. 승패를 떠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강한 서브를 바탕으로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나달을 흔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정현#페르난도 베르다스코#us오픈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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