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 질책… 文대통령이 예민해졌다, 조국을 임명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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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9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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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9.9/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9.9/뉴스1
지난 11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을 찾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기록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는 2022년 5월 개관을 목표로 문 대통령의 개별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보도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을 전했다.

당시 고 대변인이 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왜 우리 정부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별기록관을 원하지 않는다. 지시하지도 않았다” 등으로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다.

개별 언론 보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직접 언급이 공개되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고 대변인이 브리핑 말미에 “참고로, 당혹스럽다고 말씀하시면서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전하면서 문 대통령의 ‘격노’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면서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강행(9일)한 지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며칠 뒤인 16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일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동해’가 ‘일본해’로 적혀있거나 독도 표기가 잘못돼 있다는 지적(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있자 문 대통령은 당일 즉시 해당기관에 엄중 경고했다. 이 사실도 고 대변인을 통해 즉각 공개됐다. 농식품부 감사관실은 이들 공공기관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17일에는 국가보훈처가 2015년 목함지뢰 폭발사고 부상자인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 대해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 판정을 내린 것이 알려지며 홀대 논란이 일었다. 문 대통령은 당일 “관련 법조문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보훈처 건의 경우 대통령의 ‘격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사안의 내용상 질책에 가까워 보인다.

2017년 5월 취임 후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문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말은 듣기 어려웠다.

대통령직인수위도 없는 혼란스러운 정권 출범에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깜짝 남북미 판문점 회담까지 드라마틱한 외교 흐름에서도 중심을 잡아왔던 문 대통령이다.

그런 문 대통령이 최근 역정을 내는 일이 잦다. 질타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그래서 청와대 주변에서 ‘대통령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 간 통화내역을 유출하고 비위·갑질논란 등 외교부 기강해이가 잇달아 문제가 되자 외교부 직원들에게 리비아 무장단체 피랍자의 가족이 보낸 감사편지를 읽어주며 ‘속으로 뜨끔하게’ 했던 것과도 비교된다.

물론 해당 사안들을 따로따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그럴 만한 일들이 우연히 연이어 발생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은 부처의 업무 수행이 문 대통령을 속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개별기록관 건립 추진에 대한 역정은 마치 문 대통령이 지시해서 추진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 원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은 성격이다. 당신의 업적을 기리거나 발자취를 남기기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판문점 회동 당시 자신은 뒤로 빠지고 북미대화를 주선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농림부 산하 기관의 ‘일본해’ 표기는 최근 민감한 한일 갈등에 정부가 총력을 다해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됐다. 허 중사 관련 논란도 문 대통령이 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며 보훈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세심하지 못한 일처리다.

여기에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그로 인한 후폭풍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 붙는다.

조 장관을 둘러싸고 가뜩이나 민심이 동요하고 있는데 여기에 정부가 논란거리를 추가해선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조국 정국’에서 느슨해질 수 있는 공직사회에 경고를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민심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차담회를 하기 위해 본관을 나서 경내 소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7.5.11/뉴스1 © News1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차담회를 하기 위해 본관을 나서 경내 소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7.5.11/뉴스1 © News1

문 대통령은 추석 전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직접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문 대통령은 “자칫 국민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추석 밥상민심은 동요했다. 자유한국당은 ‘삭발 투쟁’을 이어나가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번 신뢰한 사람은 끝까지 믿는 문 대통령의 성정으로 볼 때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은 문 대통령에게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 전날 국정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에게 조 장관에 대한 ‘임명과 철회’ 발표문을 동시에 준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강한 신념도 흔들렸다는 시그널이다.

조 장관은 적폐청산과 공정한 사회를 국정목표로 출범한 정권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상징성이 강했다. 문 대통령의 숙원인 검찰·사법개혁을 맡길 정도로 신임했다.

조 장관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변 인물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점차 조 장관을 향해 가고 있는 점, 무엇보다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2030세대의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고민 끝에 임명을 선택하며 조 장관 의혹과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지게 됐다. 그 결과는 ‘여당 심판대’가 되는 내년 총선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집권 3년 차 ‘정책의 성과’를 강조하지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안팎으로 힘든 상황에서 ‘조국 리스크’까지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예민한 상태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직접 느슨해진 공직기강을 다잡고 있는 만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움직일지도 주목된다. 지난 7월26일 임명된 김조원 민정수석이 처음으로 공식 행보에 나선 것은 한 차례가 유일하다.

김 수석은 지난달 5일 자신의 명의로 된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조치와 관련해 반부패비서관 주관으로 공직기강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공직자 기강해이에 대한 역점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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