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송전망 건설 사업 54개 중 20개가 계획된 준공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 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에 발목을 잡힌 결과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지난해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님비’(지역 이기주의)에 막혀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등에 따르면 강원 평창군 신평창 변전소 사업은 지역 주민의 반대로 표류하면서 준공 시점이 2016년에서 2028년으로 12년이나 미뤄졌다. 7년 전 완공을 목표로 했던 동해안∼동서울 초고압 직류 송전망(HVDC) 사업도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경기 하남시가 동서울변환소 증설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물론 지역마다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국가적 프로젝트가 무더기로 발목을 잡힐 경우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송전망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력 수요에 맞춰 확보한 발전설비는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돈을 들여 원전과 태양광발전소를 지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가동률을 낮춰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 게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00조 원 이상을 투자해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송전 인프라 구축이 완료되지 않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등과 치열한 속도 경쟁을 펼쳐야 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일부 지역의 몽니 탓에 사업 시기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로봇 등 기술 혁명 시대를 맞아 안정적 전력 수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떠올랐다. 미국 연방정부가 전력망 확충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중국 역시 국가 주도로 초고압 송전망(UHV)을 대륙 전체에 깔고 있다. 전력 안정성을 확보해야 AI 데이터센터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대규모 투자 유치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 일부 단체나 지역 주민들이 ‘전자파 괴담’을 퍼트리거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며 송전망 사업을 막아세우는 것은 국가적 자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타협안을 찾되, 필요한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강제 집행 수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 생존이 걸린 핵심 인프라 구축이 님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