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작자가 알려지지 않았고, 고전 문헌을 통해 출처를 찾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스페인어권에서 시작돼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전 지혜(folk wisdom)’라고 할 수 있다.
5월을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기념일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정말이지 5월은 감사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기에 참 좋은 달이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억지춘향 격의 감사 표현은 그 효과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예로는 진심이 아니라 그저 의무감에서 비롯된 감사, 남들의 눈치가 보여서 하게 되는 감사 등이 있다. 감사가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려면 감사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만의 노력으로 무언가 좋은 것을 얻는다면, 그럴 때는 보통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감사의 마음은 제값을 주고 물건을 구입하는 식의 ‘등가교환’에서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상거래를 하면서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은, 경제 활동에 더해 친절한 행동까지도 서로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친사회적인 행동에 속한다. 하지만 이는 감사와는 다른 것이다.
감사는 우리가 분에 넘치게 좋은 것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감사는 본질적으로 ‘비등가교환’을 통해 탄생한다. 긍정심리학에 따르면 행복이 감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감사가 행복을 가져다준다. 사실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한 마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과 불행해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자 키케로는 감사를 “가장 위대한 덕목일 뿐 아니라, 모든 덕목의 부모”라고 칭송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힘만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개인적인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감사는 오직 후자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긍정 감정이다.
감사와 관련된 또 다른 구전 지혜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왜 감사가 이토록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우리가 감사를 느낀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과분한 선물을 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감사는 내가 삶을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다행히 감사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긍정 감정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지 말지보다 감사할지 말지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사실상 모든 행복 프로그램에서는 ‘감사의 기술’을 특히 강조한다. 사회운동가 헨리 비처는 감사를 “영혼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다. 부디 우리 사회에서 관광객보다는 순례자가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