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표지판 앞에 한 시민이 음식물을 비둘기에게 주고 있다.
4일 서울 중구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 앞 광장. 과자를 든 여성이 아스팔트 바닥에 부스러기를 뿌리자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몰려들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서울역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위반시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단속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여성도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비둘기 등 유해야생생물에 대한 먹이 주기를 금지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지 500일이 지났지만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 단속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피존맘’ 등 비둘기 민원 연 3000건 넘어
도심에서 흔히 보이는 집비둘기는 분변이 자동차와 시설물을 부식시키고 위생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유해야생생물로 분류된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국보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유리에 싸인 이유 중 하나도 비둘기 배설물에 의한 훼손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유해야생생물인 비둘기 개체수가 계속 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가 집계한 집비둘기 개체 수는 2021년 2만7589마리에서 2024년 3만4164마리로 늘었다.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된지 500일이 지났지만 아직 현장 단속 등이 유명무실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있다.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길거리에서 날아드는 비둘기를 피한 가족.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자연히 관련 민원도 늘고 있다. 개체수 증가에 따라 관련 비둘기 민원도 2015년 1129건에서 2024년 3037건으로 늘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피존맘’까지 등장해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제주 노형동에서는 수년째 모이를 주는 할머니 때문에 ‘새똥 범벅’이 된 주민 차량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형동 주민 백모씨(38)는 “새똥 테러에 차량이 훼손된 사례도 있다”며 “비둘기 모이 주기를 금지할 수 있게 됐다는데 민원을 넣어도 바뀌지 않고 단속도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정부는 2024년 12월 법을 개정해 지자체장이 비둘기 등 유해조수에 대해 먹이 주기 금지구역을 지정하고 단속할 수 있도록 했다. 적발 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 광화문광장 등 38곳을 금지구역으로 지정했고, 2월 기준 228개 기초지자체 중 37곳이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기후부와 각 지자체들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비둘기 모이주기 단속은 0건이었다. 서울 등 13곳은 “단속 실적이 없다”고 밝혔고, 다른 지자체들도 “실적이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지자체 담당자들은 “사실상 현장 적발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1월 금지구역을 지정한 경기 부천시 원미구 환경정책과 담당자는 “먹이 주기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아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된지 500일이 지났지만 아직 현장 단속 등이 유명무실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있다. 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부화율 낮추는 등 적극적 개입 필요”
관리 공백 속에 극단적 대응까지 나타나고 있다. ‘청소를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인천 부평구 백운역 인근에서 살충제 섞은 쌀을 뿌려 비둘기 11마리를 죽게 한 청소용역업체 직원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단순 먹이 주기 금지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은 “개체 수와 번식지, 피해 규모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싱가포르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줄 경우 최대 1만 싱가포르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스위스 취리히시는 비둘기집을 설치해 알을 모조 알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고 있다.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화율을 낮추는 등 체계적인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