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자발찌 스토킹’ 살인범, 범행전 이틀에 걸쳐 사전답사했다

  • 동아일보

이달 12, 13일 피해자 직장 일대 오가
2016년 7월 출소뒤 전자발찌 부착… 수차례 지침 위반 징역-벌금형
피해자, ‘위치추적장치’ 두차례 신고… 경찰, 감식 이유로 구속 미루다 참변
李대통령 “책임자 감찰뒤 조치하라”… 경찰 “피해 못막아 유감” 조사 착수

스토킹하던 20대 여성을 살해한 김모 씨(45)가 과거에도 수 차례 전자발찌를 찬 채로 무단 외출과 음주,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일삼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의 이런 전력을 파악하고도 1월 스토킹으로 재차 신고된 김 씨의 구속영장 신청을 미뤘고, 결국 참극이 벌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찰 대응을 강도 높게 질책하며 책임자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 전자발찌 부착 뒤에도 반복된 위반

16일 김 씨의 판결문 등에 따르면 그는 2013년 11월 강간치상과 유사강간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0년간 전자발찌 부착이 명령됐다. 그는 2016년 7월 출소해 전자발찌를 달았고, 이후 수감과 주거지 이동 등의 사유로 부착 기한이 2029년 7월로 늘어났다.

그러나 김 씨는 상습적으로 법과 보호관찰 조치를 어겼다. 그는 2018년 전자발찌 부착 지침을 어겨 처벌받았다. 2019년 6월 16일에도 금주 조치를 어기고 서울 송파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양주 2병을 마시다가 적발됐다. 당시 유흥업소 직원들이 성매매한 것처럼 허위 신고를 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27일엔 면허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사람을 친 뒤 그대로 달아나기도 했다. 두 사건으로 김 씨는 2021년 4월 징역 6개월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풀려난 그는 2023년 6월에도 야간 외출 제한 조치를 어겨 적발됐고, 두 달 뒤에는 술에 취한 채 식당에서 욕설과 협박을 하며 난동을 부리다 검거돼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이 선고됐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과거 법원이 야간 외출 제한 조치의 기간을 특정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영업방해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문제는 경찰이 김 씨의 이 같은 상습적인 위반 전력과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점이다. 김 씨는 지난해 5월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게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힌 혐의(특수상해) 등으로 신고돼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올해 1월 28일에는 피해자의 차량 하부에서 김 씨가 몰래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추적기까지 발견됐다. 그러나 이를 떼어낸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지난달 21일 또다시 피해자의 차에서 위치추적기가 나왔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달 27일 구리경찰서에 “김 씨를 유치장에 가두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라”고 지휘했다. 하지만 구리서는 김 씨가 변호사를 구한다며 두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사이, 위치추적기에 대한 정밀 감정 결과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영장 신청을 늦췄다. 지난 10년간 전자발찌 착용에 따른 준수 사항을 밥 먹듯 어겨 온 김 씨의 전력만으로도 ‘재범 위험성’을 입증할 수 있었는데도 격리 시점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 범행 이틀 전부터 여성 회사 주변 배회

경찰 출석을 미룬 사이 김 씨는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김 씨가 이달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남양주시에 있는 피해 여성의 회사 주변을 오간 사실을 파악했다. 범행 당일인 14일에는 여성의 회사에서 약 3분 거리인 도로에서 차량을 가로막은 뒤 미리 준비한 전동드릴로 차창을 깨고 흉기를 휘둘러 여성을 살해했다. 경찰은 이를 계획 범행의 정황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이날 “경찰 등 관계 당국의 대응이 더뎠고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며 강도 높게 질타했다. 이규연 대통령홍보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을 감찰한 뒤 엄하게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방지 대책이 미흡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스토킹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격리하고 가해자의 위치 정보를 신속히 파악하며 전자발찌와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를 연동하는 등 피해자를 보호할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곧바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전반적인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신속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피의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피해를 막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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