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희락갈치’. 대표 메뉴인 갈치조림은 1인분에 1만4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바야흐로 봄이다. 흉흉한 전쟁 소식이 들려오고 선거를 앞둔 정치판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지만, 숨죽였던 만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동의 기지개를 켠다. 사람들도 움츠린 몸의 활력을 깨우고 입맛을 살리기 위해 저마다 음식을 찾는다. 봄이란 계절이 원형적인 미각을 길어 올리는 음식을 찾게 하는 것인데, 그럴 때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갈치조림이다.
서울의 오래된 시장에는 어디를 가도 시간을 가둬놓은 듯한 골목이 있다. 번듯한 거리와 화려한 간판들 사이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대문시장 안쪽에는 ‘갈치조림골목’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골목의 역사는 대략 50여 년을 헤아린다.
남대문시장은 늘 새벽부터 분주하다. 상인들의 목소리, 손수레의 바퀴 소리,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좁은 골목 안에서 뒤엉킨다. 그 사이로 유독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는 냄새가 있다.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양념이 자작하게 끓는 냄새다. 그 냄새의 진원지를 따라가다 보면 ‘희락갈치’라는 간판을 만난다. 희락갈치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갈치조림으로 이름을 지켜온 집이다. 세상이 바뀌고 도시의 풍경이 몇 번이나 변하는 동안에도 이 골목의 양푼 냄비에서는 늘 같은 소리가 난다. 양념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뚜껑을 여닫는 소리, 그리고 밥을 비비는 숟가락 소리. 그것들은 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안정시킨다.
이 집 갈치조림의 매력은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젓가락을 대면 갈치살은 부드럽게 풀리고, 은근한 단맛이 입안에 번진다. 그 아래 깔린 무는 양념을 듬뿍 머금어 달큰하다. 마지막엔 으레 남은 국물을 밥 위에 얹어 비비게 된다. 그렇게 한 숟가락 떠먹고 나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봄이잖아, 살아보자. 열심히 살아보자. 꽃피듯 살아보자. 희락갈치는 갈치조림(1인분 1만4000원)을 시키면 밥과 세 가지 반찬, 그리고 갈치구이와 달걀찜이 세트로 나온다. 한 끼 식사로 더 바랄 게 없다.
갈치는 한때 고등어, 명태 등과 더불어 가장 흔한 생선이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장 바닥과 식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획량이 줄면서 이제는 예전만큼 자주 접하기는 어려운 생선이 됐다. 그 때문인지 갈치조림은 조림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중년 이상 세대에게 그것은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저녁 밥상에 식구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던 성장 서사와 이어져 있다.
희락갈치의 내부는 넓지 않다. 낡은 건물, 비좁은 자리, 오래된 의자와 테이블. 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손님들은 알고 있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치르는 작은 통행료라는 것을. 요즘 갈치조림골목은 소셜미디어로 제법 알려져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여행자들은 작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갈치조림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입 맛본 뒤 고개를 끄덕인다. 입맛을 살리는 음식에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이 여기서 확인된다.
봄날의 어느 점심, 입맛이 길을 잃은 듯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남대문시장 갈치조림골목으로 가라. 거기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넣어줄 실한 갈치살이 냄비 속에서 맞춤하게 졸여지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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