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주가 상승은 반도체 사이클 덕”
민주 “안 놀았으면 수능 만점 논리”
주가 假定 검증 불가능한 영역
‘보수 재건’ 위해선 尹 실정 성찰 필요
천광암 논설주간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하지 않고 정치를 계속했더라도 주가는 5,000∼6,000을 찍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7일 부산 구포시장을 방문해서 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장 “그건 마치 ‘학창 시절 안 놀았으면 수능 만점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 등의 반박이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더라도 한국은 고도성장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과거 벌어졌던 보수-진보 간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보수-진보 간의 공수만 바뀌었을 뿐이다.
한 전 대표의 앞뒤 발언을 자세히 보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요점은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 최근의 주가 상승은 현 정부의 정책 덕분이 아니라 반도체 슈퍼 사이클 덕분이라는 것, 둘째 기록적으로 높은 주가지수에도 서민과 시장 상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보수 재건’을 통해 서민들의 삶과 체감 경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주가 상승 원인의 경우 수치상 한 전 대표의 주장에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일 2,770.84였던 코스피 지수는 올해 2월 25일 상승률 119%를 기록하며 6,000을 처음 돌파했다.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각각 252%와 368%씩 올랐다. 코스피 전체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두 기업의 주가가 견인했다.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인한 폭발적인 반도체 수요를 빼놓고 지금의 높은 주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엄연한 실체로서 오랫동안 우리 주식시장을 억눌러 왔던 현실에서, 반도체 슈퍼 사이클만으로 ‘코스피 6,000’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높은 주가에도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면서 “부문 간 회복 격차가 커 체감경기와는 괴리가 클 것”이라고 했다. 자영업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음식업 사업자 수는 21개월 연속 감소세다. 지난해 4분기 적자 가구의 비중은 25%로 매해 4분기 기준 2019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하지 않고 정치를 계속했더라도 주가가 5,000∼6,000을 찍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한 전 대표의 의견에는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기업 실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영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성장률이나 물가와 같은 거시경제지표나 집권 세력의 국정 운영 능력, 그 나라의 비전, 정치적 안정성 등이 받쳐 주지 않으면 주가가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연 윤 전 대통령은, 불법 계엄만 빼놓으면, 한국이 나아갈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보였던가. 아니다. 취임 전부터 청와대 이전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을 시작으로, 근로시간 개혁,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의대 증원 등을 충분한 검토와 소통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하는 일마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국가적 규모의 대형 이벤트나 국책 사업도 제대로 된 게 드물다. 2030년 엑스포 유치를 호언했지만 투표 결과 2차 투표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1차 투표에서 119표 대 29표라는 참패를 당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 5개의 가치가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윤 전 대통령의 발표 8개월 만에 “전혀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은 국정 실패의 원인으로 야당의 발목 잡기를 지목해 왔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윤 전 대통령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와 보선 등에서 준엄한 민심의 경고가 있었지만 윤 전 대통령은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고집해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안겨 줬다.
‘윤 전 대통령이 계속 정치를 했으면 주가가 6,000 갈 수 있었을지’를 따지는 것은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가정(假定)’의 영역이다. 한 전 대표가 그렇게 믿는 것은 자유다. 다만 꼭 짚어 넘어가야 할 점은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을 말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보수 재건’은 윤석열 정부의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위에서 논해야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을 지켜본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윤 전 대통령도 계엄만 안 했으면 주가도 올리고 서민경제도 살렸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라면 한 전 대표가 비판해 온 ‘윤 어게인’과 뭐가 얼마나 다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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