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법 개정, 안보에 낀 70년 먼지 닦아낼 출발점[기고/표창원]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19일 23시 09분


표창원 전 국회의원
표창원 전 국회의원
전 세계 국가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저마다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강대국 간 경쟁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내야 할 우리에겐 특히나 안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1953년 제정 당시의 낡은 잣대로 21세기의 복잡다단한 안보 위협을 재단해 왔다. 형법 제98조는 간첩죄의 대상을 오로지 ‘적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 법체계에서 적국은 북한뿐이다. 이로 인해 제3국을 위해 국가 기밀과 핵심 기술을 유출하거나 탈취하는 스파이를 목격하고도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모순 앞에서 허탈해야만 했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간첩죄 개정안은 이러한 안보 사각지대를 메울 역사적 전환점이다.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한 것은, 이제야 비로소 우리 법이 냉전의 틀을 벗어나 무한 경쟁의 국제 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 본회의의 신속한 결단이다.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없으며, 기술 패권 전쟁이 치열한 현시점에서 하루라도 법 집행을 늦추는 것은 국익의 실질적 손실로 이어진다.

당연히 법 통과가 곧 안보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법이라는 ‘칼’이 마련됐다면, 이를 휘두를 ‘손’의 협력이 중요하다. 특히 2024년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완전히 이관된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국정원의 정보 역량과 경찰의 수사 역량이 결합하는 ‘방첩 거버넌스’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간첩 수사는 일반 범죄 수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외국 스파이들은 고도의 정보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로, 이들의 혐의점을 포착하는 일은 수사의 영역이기 이전에 첩보의 영역이다. 국정원은 전 세계적인 정보 네트워크와 첨단 장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외국 스파이의 동선을 추적하고 혐의를 특정하는 데 탁월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경찰은 법적 절차에 따른 증거 확보와 피의자 신문 등 사법 절차를 완결하는 강력한 공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은 방첩 활동을 통해 포착한 외국 간첩 혐의자를 특정하고, 여건이 무르익으면 이를 지체 없이 경찰에 이첩해야 하며, 양 기관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긴밀한 공조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정보의 단절은 곧 수사의 실패를 의미한다. 국정원은 경찰에 살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경찰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법정에서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증거의 사슬을 엮어내야 한다. 양 기관 사이에 그동안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벽이나 자존심 싸움은 외국 스파이들이 가장 반기는 틈이 될 뿐이다.

정부는 양 기관의 상설 협의체 구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국제 간첩 범죄 수사 기법을 공유하고 공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국가 방첩 전문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려야 한다.

안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국익을 수호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 법적 토대를 튼튼히 세우고, 그 위에서 정보와 수사가 하나로 움직이는 유기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회는 신속한 본회의 통과로 응답해야 하며, 국정원과 경찰은 ‘국가 수호’라는 대의 아래 완벽한 파트너십을 보여줘야 한다. 낡은 안보의 거울에 낀 먼지를 닦아내고, 맑아진 시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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