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과정 구조조정 동반되면 파업 가능… 재계 “지침이 더 모호”

  • 동아일보

노동부 노란봉투법 해석지침
근로조건 영향-경영 결정 분리 판단… 재계 “M&A때마다 협상해야할수도”
원청이 근로 통제땐 사용자 인정
현대제철-한화오션 하청 노조에… 중노위, 원청 상대 파업권 부여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에 대한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경우 노동조합의 파업이 가능하다는 해석지침을 내놓은 것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기존 행정해석이나 대법원 판례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8월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경영계에서는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부가 지난달 시행령을 내놓은 데 이어 26일 관련 지침을 내놨지만 여전히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발하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사회적 대화로 풀거나 법 시행을 유예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의 하청 노동조합에 원청을 상대로 한 정당한 파업권까지 부여하면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 “합병하려면 노조와 협상해야” vs “교섭 제한적”

노동부는 개정 노조법 2조 5호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문구를 ‘근로조건에 영향’과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분리해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기업이 합병, 분할, 양도, 매각 등의 결정을 하더라도 파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합병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전환 배치가 이뤄지면 파업 대상으로 바뀐다.

이 경우 기업이 일부 사업부를 다른 회사에 매각해서 근로자의 소속 신분이 바뀌거나 공장 폐쇄, 증설 등의 이유로 근로사업장이 바뀌는 경우 쟁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는 게 경영계의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위해 노조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는 “매각 등의 철회를 요건으로 쟁의 행위를 하면 위법하지만 정리해고 축소나 보상금 인상 등을 주장하면 정당한 쟁의행위가 된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사전에 해고 회피 노력 등을 성실하게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노조가 파업을 할 수 있는 교섭 대상의 예로 노동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징계와 승진제도, 정년 연장도 들었다. 과거에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만 해당됐지만 범위가 늘어났다.

다만 노동계에서는 단체교섭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사후적인 조정 국면에서만 제한적으로 교섭을 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시행령-지침이 더 모호, 보완 필요”

노동부는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정한 노조법 2조 2호에 대해서도 해석지침을 내놨다. 지침에 따르면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가진다면 사용자로 인정된다. 원청 사측이 하청의 작업 투입 인원과 규모, 시간대, 교대 구성 등을 사전에 승인한다면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성과급이나 상여금 지급 여부를 원청이 결정하고 하청이 배분만 한다면 역시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실상 사내 하청에 국한해 사용자 지위를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청과 하청의 공정이 밀접하게 연동된 제조업 사내 하청의 경우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달 노란봉투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이어 해석지침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사용자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률상 모호성이 오히려 확대됐다”며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로 풀거나 법 시행을 6개월 유예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중노위는 현대제철과 한화오션 하청 노조가 원청 회사를 상대로 교섭에 응하라고 낸 쟁의 조정신청에서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조정이 종료되면 이들 노조는 정당하게 파업을 할 권한을 얻는다.

앞서 법원은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에 대해 사용자성 일부가 인정된다고 판결해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 사건은 아직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경총은 “원하청 노사관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중노위는 성급한 결정으로 사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노위의 무리한 결정은 (노란봉투법 시행 후) 공정한 판단을 할지 의심하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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