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보건의료원에서 최용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오른쪽)가 아동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곡성군 제공
“의미 있는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져 보람을 느낍니다.”
광주에서 약 60㎞ 떨어진 전남 곡성군 보건의료원에서 반년 넘게 소아과 진료를 하고 있는 최용준 씨(42)는 27일 이렇게 말했다.
곡성군은 전체 면적(547.74㎢)의 약 70%가 산지인 농촌 지역이다. 전체 인구 2만6621명 가운데 아동·청소년은 2314명(8.7%)이다. 곡성 지역 첫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최 씨는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올해 5월 개설된 ‘곡성에서 매일 만나는 소아과’ 진료를 맡고 있다.
최 씨는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인하대 의대를 거쳐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다. 그는 “요즘은 환절기라 하루 평균 40명 안팎의 아이들이 진료를 받는다”며 “그만큼 지역에 소아 진료 수요가 절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1명당 진료와 진단, 투약 결정, 보호자 설명까지 하면 최소 8~9분은 걸린다”고 했다.
그는 진료 외에도 퇴근 전이나 근무 시작 전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일도 흔하다. 최 씨는 “6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찾아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곡성군에는 1965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제도 도입 이후 단 한 차례도 상시 진료를 하는 민간 전문의가 없었다. 아이가 아플 경우 부모들은 순천이나 광주까지 왕복 2시간 이상 이동해야 했고, 응급 상황에서는 불안이 컸다.
곡성군은 올해 5월 2일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 ‘곡성에서 매일 만나는 소아과’를 개설하며 65년 만에 상시 진료 체계를 마련했다. 해당 소아과는 개설 이후 6개월 동안 2428명을 진료했다. 이는 곡성 지역 전체 아동·청소년 수를 넘어서는 규모다.
지역 학부모들의 반응도 컸다. 석곡면에 사는 쌍둥이 부모는 “소아과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라며 “예전에는 이동 중 아이 상태가 나빠질까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곡성읍에 거주하는 한모 씨(40)는 “소아청소년과가 생겼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며 “가까운 곳에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곡성군은 소아과 개설이 출생아 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곡성 지역 출생아 수는 2022년 44명, 2024년 87명, 올해 1∼10월 79명으로 늘었다. 김하나 곡성군 고향사랑팀장은 “의료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지역에 심리적 안정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 씨의 진료 소식을 듣고 전북 남원 등 인근 지역에서 자녀 손을 잡고 곡성으로 찾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조상래 곡성군수는 “곡성에서 매일 만나는 소아과는 단순한 의료기관이 아니라 전국 기부자들의 마음이 모여 이뤄낸 결과”라며 “고향사랑기부금이 지역을 바꾸는 힘이 되는 사례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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