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같은 순간이 될 수 있다.” 2023년 5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이 활자 인쇄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꿀 기술이라고 했다. 인쇄술은 소수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량 복제함으로써 신이 주인공이던 중세 시대를 끝내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는 AI도 지식의 생산, 유통 방식을 혁신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2년 11월 30일 올트먼이 만든 챗GPT가 처음 공개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올트먼의 예언처럼 인류 역사는 ‘AI 이전’과 ‘AI 이후’로 나뉜다. 현재 세계 성인 인구의 10%가 넘는 8억 명가량이 챗GPT를 사용한다. 오픈AI가 사용자가 챗GPT와 나눈 대화 100만 건을 분석했더니, 올해 들어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 업무를 위탁하는 ‘수행’을 앞질렀다. 업무 보조 도구를 넘어 쇼핑, 건강 같은 일상적 의사 결정까지 AI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제2의 나’가 된 셈이다.
▷아직 서툴고 종종 엉뚱한 대답을 내놓던 챗GPT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문자만 다루던 시스템은 음성을 소화하고 이미지를 인식하더니 이제는 외부 서비스와 연결되는 전천후 AI로 진화했다. 회사에선 비서로, 학교에선 교사로, 병원에선 의사로, 심지어 전장에선 동료 군인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일자리 시장이 재편됐고 AI와 협업하는 인간과 그러지 않는 인간 사이 생산성 격차가 벌어졌다.
▷AI 등장에 따른 규범 정립이 지체되면서 ‘AI 아노미’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AI가 만든 가짜 정보가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선거를 교란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수집돼 ‘빅브러더’의 통제가 쉬워졌다. AI 기술을 선점한 기업과 개인이 부를 독식해 양극화가 심화한 것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딥페이크 음성을 이용한 사기, 영상을 이용한 포르노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증가했다. 인류의 지적 발전을 추동해 온 엄격한 연구 윤리도 무너지고 있다.
▷AI는 문자로 쌓인 인류의 지식을 거의 흡수한 상태다. 의사·변호사 시험에 척척 붙고, 어떤 분야에선 박사급 지식을 보여준다. 지식에만 능한 줄 알았는데 창의적이기도 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무수한 패턴 조합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는다. AI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AI 작가가 쓴 책이 팔린다. 아직 육체노동을 대체하진 못했지만, 곧 피지컬 AI가 보급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숨 가쁘게 진화하는 AI가 우리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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