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책, 그리고 노란 잠수함[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책이 더 재미있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잠자기 전, 전기장판으로 따뜻해진 침대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요즘은 전자책을 읽고 있다. 종이책도 좋지만 어두운 밤 불을 끄고 책을 읽으며 스르르 잠들 수 있어서 좋다.

전자책을 이용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고 있다. 책을 읽던 젊은 시절의 기억과 책의 내용이 묘하게 어우러져, 읽는 동안 시간을 초월한 비현실적인 세계에 내가 놓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책의 세계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다.

필립 말로의 탐정소설도 다시 꺼내 들었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아침에 탐정의 침대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이 만들어내는 이 비현실적인 여운이란. 책에 빠지면 빨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책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우리도 핵추진 잠수함을 가질 수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호기심에 1869년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를 주문해 다시 읽었다. 잠수함이 발명되기 전, 잠수함을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SF)이 쓰였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경이롭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을 수 없다.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남극과 북극,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 홍해 등 미지의 공간과 신화 속 세계를 박진감 있게 여행한다. 과학적 상상력과 그 속에 숨어 있는 과학, 인간적인 메시지가 흥미로운 책이다.

핵추진 잠수함(핵잠) 속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숨어 있다. 저 유명한 ‘E=mc²’ 공식이 활용된다. 원자핵이 분열하면, 분열 전과 후의 질량의 합이 달라진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그 질량의 차이만큼이 에너지로 방출된다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1905년에 발표했다. ‘물체의 관성은 그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라는 세 쪽짜리 짧은 논문이지만 핵에너지·핵무기·핵발전의 혁명적 이론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핵잠의 연료인 농축우라늄 1g이 에너지로 변환된다면 21kt(킬로톤·1kt은 TNT 1000t 폭발력) TNT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은 약 15kt TNT였다. 농축우라늄의 핵분열로 인해 발생한 열은 물을 가열해 수증기를 만들고, 그 수증기가 증기터빈을 돌리면서 잠수함의 동력이 만들어진다. 디젤 연료와 달리 농축우라늄은 한 번 장착하면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1954년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핵추진 잠수함 노틸러스는, 그때까지 두꺼운 빙하 때문에 도달할 수 없었던 북극점을 잠수로 통과해 도달할 수 있었다. 일반 디젤 잠수함은 연료 주입 때문에 며칠마다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지만, 이론적으로 핵추진 잠수함은 연료나 산소 공급 없이 무제한 잠수할 수 있다. 다만 승무원의 휴식을 감안해 일반적인 작전 수행 기간은 2∼3개월 정도다.

비틀스의 노래 중 링고 스타가 부른 ‘옐로 서브머린(노란 잠수함)’이 있다. 우리가 보유한 핵잠을 통해, 노래 가사처럼 “노란 잠수함 속에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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