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최애’의 목소리를 현실로…성공하는 오디오 콘텐츠의 비법 [브랜더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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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방금 우려낸 보리차에서 위스키 맛이 난다', '퇴사날 마지막 업무 정리하면서 들었는데 회사를 통으로 정리한 기분...'

영화 <신세계> OST ‘Big Sleep’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듣는 이를 순식간에 누아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끈적거리면서도 음울한 멜로디는 말 그대로 ‘브금(BGM)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음악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웹소설과 웹툰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상상력에만 의존해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로맨틱한 장면에서 샤랄라한 배경음악을 (자체적으로) 깔아야 하는 독자들에게 있어 콘텐츠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경음악은 효자나 다름없다. 네이버웹툰은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특정 웹툰을 읽을 때 함께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도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음악은 웹소설 ·웹툰 IP 시장의 감초 역할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웹툰 OST는 음원 차트 1위를 하며 대중들의 귀까지 사로잡았다. 넘어서 오디오 콘텐츠 전반에서 웹소설 ·웹툰 IP와의 결합도 눈에 띈다.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와 ‘윌라’는 웹소설 기반 오디오북을 주력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다. 덕후들은 수억 원대 웹툰 IP 오디오 드라마 펀딩도 성공시켰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웹소설 ·웹툰 속 음악과 목소리를 어떻게 덕후들의 실망감 없이 현실로 무사히 꺼내 올 수 있을까?

출처: 유튜브


OST: 덕후픽 아닌 '대중픽'
터놓고 말해 OST 가 웹소설 ·웹툰 산업에서 혁신적인 존재는 아니다. 이전부터 네이버웹툰 등 플랫폼들은 독자의 감상을 돕기 위해 작품 내 자체 음향 효과나 배경음악을 삽입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최근 웹소설 ·웹툰 OST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제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를 넘어 독립적인 콘텐츠로 인정받을 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

배우 박보검과 고윤정이 ‘내가 많이 사랑해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출처: 카카오페이지)

2020년 가수 이승철이 부른 ‘달빛조각사*’ OST ‘내가 많이 사랑해요’가 시발점이었다. 달빛조각사를 연재한 카카오페이지 측은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콘텐츠의 OST는 흔히 접할 수 있지만 높은 인기를 끄는 웹툰 콘텐츠에서는 이를 쉽게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당시 이승철이 자신의 SNS를 통해 ‘제겐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해당 음원은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완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연재 기간 12년에 달하는 게임 판타지 웹소설로 2015년 카카오페이지에서 웹툰으로 제작됐다.

이제 인기 가수들이 웹소설⠂웹툰 OST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출처: 멜론)
이제 인기 가수들이 웹소설⠂웹툰 OST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출처: 멜론)

이후 김종국, 에일리, 규현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웹소설⠂웹툰 OST 역시 음원차트에서 순항하며 이제 웹콘텐츠 OST도 영화나 드라마 OST 못지 않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처럼 톱가수들이 음원 제작에 참여하고 OST가 단순 배경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음악 콘텐츠로서 영향력을 키운 데는 웹소설⠂웹툰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이 한몫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 웹툰 산업은 2020년 연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고 국내 웹소설 산업 역시 지난해 연 매출액 1조 원을 넘어섰다.이에 따라 업계에서 OST 제작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국내 OTT 티빙이 지난 2월 선보인 예능 ‘웹툰싱어’도 이 같은 변화를 잘 보여준다. 웹툰싱어는 웹툰 14편을 선정해 웹툰 전체적인 분위기나 웹툰 속 명장면과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가창하는 프로그램으로 당시 효린, 알리, 옥상달빛 등 인기 가수들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국내 드라마 CD 제작사 오디오코믹스는 지난 11월 웹소설 ·웹툰 OST로만 세트리스트를 구성한 OST콘서트를 3일간 개최하기도 했다.

오디오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최근 웹소설⠂웹툰 덕후들의 심금을 울리고 지갑을 열게 하는 핵심 콘텐츠는 ‘오디오’다. 콘텐츠를 한 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감명 깊게 읽은 다른 동지(!)들과 감상을 나누고, 작가가 풀어주는 외전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덕후들이 콘텐츠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오디오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당연지사. 오디오북, 오디오드라마, 오디오웹툰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먼저, 오디오북은 주로 한 명의 성우나 배우가 작품을 낭독하는 형식이다. 밀리의 서재, 윌라 등 독서 플랫폼이 적극 나서는 분야기도 하다. 윌라는 현재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오디오북 150여 종을 선보이고 있다. 웹소설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심 모씨(26세)는 “웹소설은 일반 책보다 내용이 쉽고 가벼워서 오디오북으로 들어도 부담없이 라디오처럼 켜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텀블벅


오디오드라마는 여러 명의 성우가 개별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는 방식이다. 상상만 하던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전문 성우들의 연기와 함께 실감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오디오드라마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대표적인 인기 상품이기도 하다. 텀블벅에서 진행한 오디오 드라마 펀딩 프로젝트는 총 44개인데 그중 38개가 펀딩에 성공했다. 펀딩 금액도 억 소리 난다. 네이버 시리즈 무협 웹소설 ‘화산귀환’은 두 차례 진행한 오디오드라마 펀딩을 통해 도합 9억 4000만 원을 모았다. 네이버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는 한 차례의 펀딩으로 8억 3000만 원 모금을 달성했다.

오디오웹툰 또한 마찬가지다. 오디오웹툰은 웹툰을 영상 형식으로 제작한 후 더빙과 음악, 음향을 더한 것인데 별도 각색 없이 원작 웹툰에 최소한의 모션만 융합했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과는 구분된다. 아직까지 국내 애니메이션은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입지가 약한데 이같은 웹소설⠂웹툰 기반의 오디오 콘텐츠의 확장으로 영상 콘텐츠로의 확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덕후들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세부적인 차이점도 쉽게 파악해 낸다. 웹소설⠂웹툰 IP 기반 콘텐츠 확장을 염두에 두는 제작자들이 디테일을 더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다.

덕후들은 상상만 하던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지갑을 열곤 한다. 단, 구매는 하지만 ‘만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최근 오디오드라마 펀딩에 참여한 여 모씨(32세)는 “독자 각각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캐릭터의 목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예상했던 캐릭터의 목소리와 성우진의 목소리가 다를 때는 솔직히 실망스럽다”며 “스타 성우들이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유명세가 아니라 캐릭터 일치성을 더 고려해서 캐스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활자돌'의 앨범이 현실로?
상상 속의 음악도, 목소리도 현실로 무사히 꺼내 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 작업물이 있다. 바로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TNB(뉴블랙)’의 작중 데뷔곡 ‘불꽃놀이’가 실제 음원으로 출시된 것이다. TNB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불꽃놀이를 실제로 듣다니 소원성취했습니다’, ‘내 돌이 드디어 차원을 넘는구나’라며 감격스러워하는 팬들의 댓글이 무성하다.

특히 ‘활자돌’ 최초로 음원을 냈다는 점에서 다른 웹소설⠂웹툰 덕후들의 이목이 함께 모였다. 잠깐, ‘활자돌’부터 짚고 넘어가자. 최근 웹소설⠂웹툰계에선 K-POP 아이돌이 주인공인 일명 ‘아이돌물’ 장르가 인기인데 여기서 활동하는 아이돌을 ‘활자돌’이라고 부른다. 텍스트 속에만 존재하므로 당연히 음원을 들을 수도, 뮤비를 볼 수도, 콘서트를 가거나 음악방송에 투표를 할 수도 없는데 덕후들은 여느 아이돌 못지 않게 활자돌에 열광한다.


지난 5월 완결난 웹소설 ‘데뷔를 못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테스타’가 대표적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지만 덕후들은 실제 아이돌 가수를 응원하듯이 생일 카페도 열고 지하철 생일 광고를 집행한다. 그에 응답하듯 테스타는 현실의(!) Mnet 시상식 멜론 뮤직 어워드(MMA)에 커피차와 축하메시지를 보내면서 마치 현실에서 데뷔할 것만 같은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데못죽의 연재 플랫폼이자 테스타의 소속사(!)인 카카오페이지가 보낸 것이다.)

이처럼 활자돌에 진심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과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 된 덕후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번 ‘불꽃놀이’ 음원이 출시됨에 따라 다른 활자돌 덕후들도 은근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소설’ 속 완벽한 ‘아이돌’이라는 점. 작중 아이돌 그룹의 분위기와 캐릭터 개개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섣불리 제작했다간 비판이 쏟아질 수 있다. 힙합 장르를 다룬 웹소설의 팬인 정 모씨(22세)는 “심하게는 주인공의 연령대나 작중 묘사된 음색과 무관한 가수가 음원을 출시할 때도 있는데 차라리 상상으로라도 남겨주지라는 원망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터놓았다.

누구보다 자신들의 장르를 아끼는 덕후들의 깊은 애정이 곧 ‘무조건적 수용’은 아니다. 오히려 더 사랑하기 때문에 깐깐한 빨간펜을 들 수밖에 없는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덕심(心)을 활용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From.BRDQ
최애에게 온 마음을 바치는 덕후의 덕심(心)을 우리 브랜드로 끌어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특급 비법 <사로잡기> 2편에서는 덕후들의 눈을 사로잡은 웹소설·웹툰 IP가 덕후들의 귀까지 홀린 노하우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인터비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브랜더쿠#웹툰#오디오#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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