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내겐 정복 힘든 에베레스트이자 선생님 같은 존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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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하루에 연주… 피아니스트 박재홍
“협주곡 1, 2번이 사실적이라면… 4, 5번은 신학적-추상적 느낌
베토벤 악화된 청력과 관계 있는 듯
5곡 모두 연주하는 데 3시간 걸려… 위대한 작곡가의 변화 만날 수 있어”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숨도 안 쉬고 베토벤이다. 그분의 위대한 유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숨도 안 쉬고 베토벤이다. 그분의 위대한 유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2021년 22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네 개의 특별상(실내악 특별상, 부소니 작품 연주상, 알리체 타르타로티상, 건반악기 트러스트상)까지 휩쓴 피아니스트 박재홍(24)이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병욱 지휘 인천시립교향악단 협연으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다. 9월 신창용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5곡, 11월 백혜선의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곡에 이어지는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순서다. 12월의 첫날 박재홍을 만나 ‘베토벤 협주곡 다섯 곡을 하루에 치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다. ‘토크 만렙(최대 레벨)’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모든 질문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박재홍에게 베토벤은 어떤 작곡가인가요?


“베토벤은 에베레스트 산처럼 평생 정복하기 힘든 작곡가이며 선생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해주고, 호되게 꾸짖어주실 때도 있죠. 베토벤이 직접 쓴 악보를 보면 고친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많은 고뇌 끝에 나온 결과이니 모든 부분이 ‘그래야만 하는(Es muss sein)’ 거죠. 악보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을 지키기만 해주면 쉽지만 그걸 지키기가 너무 어렵죠. 모든 음에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주하기 어려운 작곡가입니다.”

―다섯 곡이 비슷하면서 다르죠?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4번은 어머니, 5번은 아버지, 1∼3번은 자식들과 같다’고 얘기했죠. 공감이 갑니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그렇듯이 홀수 번호는 더 중후하고 짝수 번호는 더 우아한 면도 있죠.”

―이 곡들을 하루에 듣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박창수 대표가 주최하는 하우스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32명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곡을 이어서 연주한 일이 있어요. 박 대표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10시간은 당연히 긴 시간이지만 한 작곡가의 인생을 불과 10시간으로 축약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베토벤의 협주곡 다섯 곡도 연주하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동안 한 작곡가가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수립하는 과정을 만나는 거죠.”

―베토벤이 협주곡 1, 2번을 썼을 때는 청력이 꽤 남아있을 때고 4, 5번을 쓸 때는 매우 악화된 상태였죠.

“1번과 2번은 화음 연결과 프레이징(분절법)이 눈앞에서 사실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같다면 4번, 5번에서는 신학적이랄까, 추상적으로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점이 청력의 악화와도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부소니 콩쿠르 우승 직전인 2021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연주는 ‘강건하고 거침없다, 유려하고 다이내믹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재홍 씨의 ‘피지컬(키 187cm)’을 연주자로서 유리한 요소로 얘기하는데요.

“사실은 체력이 좋지 않아요. 지금도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힘 있는 연주자보다는 그 반대쪽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꼽는다면….


“러시아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뇨프를 좋아해요. 처음 들을 때는 ‘저렇게 치면 안 되는데’ 하다가 이내 그게 정답인 것처럼 설득되죠. 특히 여린 소리를 정말 닮고 싶어요.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도 좋아하는 연주가죠.”

―내년의 중요한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요.

“베를린으로 활동의 터전을 옮기게 될 것 같아요.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건지는 고민 중입니다.”

4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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