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진입막고 中企에 나눠 맡겨…전체 시스템 관리할 업체 없어” 정부가 전 국민의 일상을 마비시킨 ‘행정망 먹통 사태’를 56시간이나 걸려 겨우 정상화시킬 정도로 문제 파악 및 대응이 늦었던 것은 정부의 ‘쪼개기 발주’ 탓이라는 지적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2002년 11월 전자정부 시스템 출범 후 전산망을 구축하거나 수리할 때 여러 업체로 나눠서 발주하고, 또 계약 만료 후 새 업체로 관행처럼 교체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공무원 행정전산망 ‘새올’ 및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네트워크 유지보수 사업을 수주한 적이 있는 IT 업계 임원 A 씨는 “정부는 입찰을 낼 때 전체 사업을 통합해 한 업체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업으로 쪼개 입찰을 낸다”고 말했다. 그 경우 여러 기업이 각각 사업을 수주하게 된다. 이번과 같은 먹통 사태가 일어나면 정부로선 어느 업체에 연락해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지 알기 힘들어진다.
A 씨는 또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정부는 거의 예외없이 새 사업자를 선정한다”며 “그러다 보니 기존 시스템을 더 고도화하시키고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새 사업자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새 사업자를 관행처럼 구하는 것은 감사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년 연속으로 동일한 사업자를 선정해도 ‘특혜’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에 가급적 1년 계약이 끝나면 다른 사업자를 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부가 다시 공공 시스템 입찰제도를 수정해 대기업의 참여를 열어 놓는다고 해도 대기업이 정부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 정보통신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공 서비스가 워낙 저가로 발주되다 보니 대기업 차원에서 수익성이 낮아 참여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박병호 KAIST 경영공학과 교수는 “공공 수주에 참여하는 기업 대부분이 인건비 정도만 받고, 추후 큰 입찰에 경력쌓기용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 보니 실력 있는 인력이 참여하거나 좀 더 나은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