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덕스러운 과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215〉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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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여든, 그댄 열여덟. 그댄 홍안이요 난 백발.
뒤집으면 그대와는 원래 동갑내기, 우리 사이엔 환갑 하나가 끼어 있을 뿐.
(我年八十卿十八, 卿是紅顏我白髮. 與卿顛倒本同庚, 只隔中間一花甲.)

―‘무제(無題)’·장선(張先·990∼1078)












여든 노인이 열여덟 젊은 첩(妾)을 들이면서 능청맞게 익살을 떤다. 첩 나이를 뒤집으면 동갑이라는 궤변도 그러려니와, 둘 사이의 차별이 고작 ‘환갑 하나’ 정도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수작이다. 이런 시를 ‘타유시(打油詩)’라 한다. 문학성보다는 해학과 풍자의 맛이 농후해서 생활에 윤기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시적 감흥은 덜해도 친한 사이끼리 농담으로 주고받는 일종의 즉흥시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소동파가 노인의 이 의뭉하고 천연덕스러운 자랑질에 예의 해학적 기질을 발휘하여 응수한다. ‘열여덟 신부에 여든 먹은 신랑이라, 백발 성성한 채 붉은 얼굴 마주했네. 원앙이 이불 속에서 짝을 이룬 밤, 배나무 한 그루가 해당화를 짓누른 격.’(‘장난삼아 장선께 드리다’) 늙음을 상징하는 백발과 역시 빛깔이 하얀 배꽃, 그리고 젊음의 상징인 홍안과 붉은색 해당화의 선명한 대비. 두 시는 공통적으로 흰색과 붉은색으로 노소의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다만 한 사람은 그 차별성을 통해 당당한 자부심을 과시한 반면, 다른 쪽은 차별의 부당함 혹은 무모함을 넌지시 풍자한 점에서 서로 대조적이다.

사실 소동파는 장선보다 마흔일곱이나 어린 후배. 아버지 소순(蘇洵)보다도 스무 살 높은 연배였지만 소탈하고 해학적인 둘의 성격이 서로 통했기에 망년지교(忘年之交)가 가능했다. 특히 장선은 송대의 대표 문학인 사(詞)의 기틀을 닦은 인물. 두 사람이 격의 없이 지내긴 했어도 동파는 장선을 ‘내 창작을 가르치고 깨우쳐준 은사’라 존숭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천연덕스러운 과시#타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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