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치, 음식을 넘어 의례-신앙-경제 지탱해준 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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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기획한
김창일 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2013년 강원 삼척의 바닷가에서 ‘머구리 잠수복’을 입고 있는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학예연구사 제공
2013년 강원 삼척의 바닷가에서 ‘머구리 잠수복’을 입고 있는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학예연구사 제공
“조기는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산업 그 자체였어요. 1950년대 인구 약 1000명인 연평도에 조기 파시(波市·풍어기에 열리는 생선시장)가 열리면 선원만 2만여 명이 들어왔습니다. 연평도어업조합의 일일출납고가 한국은행보다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죠.”

한때 인천 연평도는 ‘조기의 섬’이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50)가 2017년 연평도에 1년 동안 살며 연구하던 당시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95세 노인은 회고했다. “그 시절 연평도는 서울이 부럽지 않았다. 파시가 열리면 골목골목이 명동보다 붐볐다”고. 연평도민 사이에서 전승되는 민요 ‘연평도 니나니타령’에는 “연평도에 물이 마르면 말랐지 내 주머니 돈이 마르랴”란 노랫말이 나온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파시의 소음과 바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던 조기 떼 우는 소리는 1968년 5월 26일 연평도 파시가 멈춘 후 사라져 버린 옛 소리가 됐다. 해수 온도 변화로 더 이상 조기가 연평도 바다까지 북상하지 않는 탓이다. 6일 전화로 만난 김 연구사는 “이 생선과 함께 생계를 지탱했던 어민의 삶도 사라졌다”고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에서 강원 인제군 용대리의 황태 덕장을 재현한 모습. 나무 기둥에 걸려 있는 황태는 모형이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사온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의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에서 강원 인제군 용대리의 황태 덕장을 재현한 모습. 나무 기둥에 걸려 있는 황태는 모형이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사온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8월 15일까지 열리는 ‘조명치(조기 명태 멸치) 해양문화특별전’을 기획한 김 연구사는 “사료가 아닌 살아 있는 문화로서의 조명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강원 황태 덕장과 부산공동어시장, 인천 연평도 등을 오가며 실제 ‘조명치’의 실물과 어시장의 소리를 짭조름한 생선 비린내와 함께 전시장 안에 들여왔다. 전시장에는 그가 연평도에 살며 어민들에게 받아 입었던 ‘갑바’(어민들이 작업할 때 입는 비옷)도 걸려 있다. 약 6년 가까이 경남 남해, 제주, 울산 등 전국 곳곳의 해양문화를 탐사하며 뭍보다 바다와 가까이 지낸 그를 박물관에서는 ‘용왕님’이란 별명으로 부른다.

김 연구사는 “조명치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의례와 신앙, 경제를 지탱해주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종묘에서 치르는 행사 절차를 풀어쓴 ‘종묘친제규제도설(宗廟親祭規制圖說) 병풍’에는 종묘대제에 조기젓과 명태포가 쓰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조선시대 한반도 어획량 1, 2위를 차지했던 명태와 조기는 어디서나 손쉽게 구해 제사상에 올릴 수 있었던 생선”이라며 “특히 명태는 한 번 건조하면 수십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특성 때문에 바짝 말려 ‘액막이 북어’로도 쓰였다”고 했다. 북어는 가난한 백성들도 값싸게 구할 수 있어 ‘민(民)의 생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이 ‘명태의 나라’였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됐다. 2008년 이후 국내 명태 어획량은 ‘0’이다. 그 대신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수산물 121만7869t 가운데 냉동 명태(동태)가 33만6287t(27.6%)으로 1위다. 밥상에 오르는 동태의 98%는 러시아산이다. 김 연구사는 “바다 위 선원들의 땀이 밴 ‘명태잡이 소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바다에서 들리지 않는다”며 “전시를 통해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리와 냄새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조명치#해양문화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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