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입막음’ 트럼프, 美 역대 대통령 첫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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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소]
2016년 대선전 여배우에 13만달러
트럼프 “정치탄압, 바이든에 역풍”
차기대선 출마 가능… 美 극한 분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공항에 도착해 2024년 대선을 위한 
연설이 예정된 텍사스주 웨이코행 비행기에 탑승하려 하고 있다. 같은 달 30일 뉴욕 맨해튼 대배심은 그가 2006년 성관계를 가진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2016년 대선 직전 13만 달러를 입막음 조로 건네는 과정에서 가족 기업 ‘트럼프그룹’의 
돈을 쓰고 회사 문서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그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초유의 전직 대통령 기소에 미 정계가 극한 대립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웨스트팜비치=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공항에 도착해 2024년 대선을 위한 연설이 예정된 텍사스주 웨이코행 비행기에 탑승하려 하고 있다. 같은 달 30일 뉴욕 맨해튼 대배심은 그가 2006년 성관계를 가진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2016년 대선 직전 13만 달러를 입막음 조로 건네는 과정에서 가족 기업 ‘트럼프그룹’의 돈을 쓰고 회사 문서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그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초유의 전직 대통령 기소에 미 정계가 극한 대립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웨스트팜비치=AP 뉴시스
미국 뉴욕 맨해튼 대배심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전·현직 미 대통령의 기소 결정은 1776년 건국 후 처음이다. 워터게이트 도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불륜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피했던 ‘첫 형사 기소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 결정 후 “최악의 정치 탄압이자 마녀사냥”이라며 “조 바이든(대통령)에게 역풍이 불 것”이라고 반발했다.

맨해튼 대배심은 2006년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 성관계를 가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직전 당시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시켜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가족 기업 트럼프그룹의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문서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제시했다. 공소장은 공개되지 않아 공식 혐의는 검찰의 기소 때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설사 유죄를 선고받아도 2024년 대선에는 출마할 수 있다. 다만 그는 지지층의 의회 난입을 배후 조종한 혐의 등 별도의 수많은 사법 위험에 직면한 상태다. 동시에 각종 소송의 적체로 트럼프 반대파가 원하는 만큼 빨리 판결이 나오기 어렵고 트럼프 지지층 또한 결집할 가능성이 커 기소 결정이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트럼프 지지층 “바이든 탄핵을”… “美상황, 남북전쟁 직전과 유사”




트럼프, 美 역대 대통령 첫 기소

이르면 4일 출두… 머그샷 찍을듯
NYT “후임자 때 기소, 개도국 같아”

경찰, 기소한 검사장 신변보호 강화



“미국의 상황이 남북전쟁 직전인 1850년대와 유사하다. 내전 발발 조건이 충족됐다.”

“전직 대통령이 후임자에 의해 투옥되는 개발도상국식 ‘승자의 정의’처럼 보일 수 있다.”

1776년 미국 건국, 1789년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취임 후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기소 결정을 두고 미 시사매체 타임과 뉴욕타임스(NYT)가 각각 내놓은 평가다. 대통령의 면책 특권이 헌법에 명시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 그런데도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당적이 다른 전직 대통령의 기소를 자제해 왔는데 이 전통이 깨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야당 공화당은 기소 결정을 주도한 최초의 흑인 맨해튼 지검장 앨빈 브래그 검사장(50)이 집권 민주당원이란 이유로 그가 정치적 수사를 펼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정당한 수사”라고 맞선다.

이 사건 외에도 지지층의 의회 난입 선동, 가족 기업의 탈세 등 다양한 사법 위험에 노출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장기화해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 양당이 극한 대치를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최초 흑인 맨해튼 지검장, 17년 전 스캔들 기소
기소 결정의 뿌리는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전 특별검사의 수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대선 당시 미 언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악영향을 우려해 2006년 성관계를 가진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44)에게 대선 직전인 2016년 10월 입막음 목적의 13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건넸다고 보도했다. 당시 돈을 건넨 사람은 2006∼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를 지내며 각종 뒤치다꺼리를 도맡은 ‘해결사’ 마이클 코언이다.

2017년 5월 임명된 뮬러 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각종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코언에게 ‘플리바겐(유죄 인정 후 감형)’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코언 또한 “트럼프의 지시로 대니얼스에게 돈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특검과 별도로 트럼프의 사업체가 있는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은 2017년 1월 트럼프그룹이 코언에게 이 13만 달러를 변제하기로 결정한 것에 주목했다. 트럼프 개인의 일에 회삿돈을 쓰면서 문서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등 다른 범죄가 자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다.

2021년 11월 선출직인 맨해튼 지검장에 당선된 브래그 검사장은 이 수사에 대한 속도를 부쩍 높였다. 그는 올 1월 일반 시민이 특정인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을 구성했다. 이후 두 달 만에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기소 결정을 이끌어냈다. 브래그 검사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뉴욕 토박이이며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자서전에서 자신을 맨해튼 빈민가 ‘할렘’이 낳은 아들로 묘사했다. 기소 결정 후 뉴욕 경찰은 브래그 검사장에 대한 신변 보호를 강화했다.

● 트럼프 지지층 “바이든 탄핵”… 민주 “정당”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 하원의 탄핵 소추안 통과에 이어 퇴임 후에도 최초로 기소가 결정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는 성명을 통해 “부패하고 조작된 혐의”라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성관계 사실과 코언을 시켜 돈을 건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NYT는 그가 4일 법원에 자진 출두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때 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 ‘머그샷’을 찍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 신분을 감안할 때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서 조작은 주(州)법, 선거법 위반은 연방법이어서 둘을 결합한 기소 결정이 부적절하며, 이미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까지 한 코언의 증언 신빙성 또한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공소 기각 가능성을 거론한다.



‘트럼프 기소’ 놓고 둘로 갈라진 미국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파들이 그에 대한 맨해튼 대배심의 
기소 결정을 찬성하는 의미에서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위쪽 사진). 같은 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가 퇴임 후 거주하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미국을 구하라’는 깃발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맨해튼·팜비치=AP 뉴시스
‘트럼프 기소’ 놓고 둘로 갈라진 미국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파들이 그에 대한 맨해튼 대배심의 기소 결정을 찬성하는 의미에서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위쪽 사진). 같은 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가 퇴임 후 거주하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미국을 구하라’는 깃발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맨해튼·팜비치=AP 뉴시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등 공화당 주요 인사는 사법 체계가 사적 복수 도구로 쓰였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거주지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등에서도 지지층이 규탄 시위를 벌였다. 타임에 따르면 일부는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쳤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전 대통령도 모든 미국인과 동일한 법을 적용받는다”며 기소 결정이 정당하다고 맞섰다. 백악관은 입장을 내지 않았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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