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제조2025’ 데자뷔, 바이든 ‘반도체 독트린’ [특파원칼럼/문병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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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앞세워 보호주의 강해지는 美
‘제2매카시즘’ 광풍에 냉정한 대응 필요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조건은 미국에서도 논란이다. 핵심 축은 크게 두 가지다.

한 축은 67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에 너무 많은 조건이 붙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욕심을 너무 부리다 ‘배가 산으로 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대기업 배만 불린다는 민주당 일각의 반대를 고려해 초과이익공유제와 좌절된 바이든 대통령 역점 법안 일부 내용을 보조금 조건으로 반영했다. 이러다 보니 반도체 생산과는 관련 없는 조건을 억지로 붙여 스스로 보조금 효과를 떨어뜨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논란은 반도체법으로 대표되는 바이든식 산업 정책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 반도체 산업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방식이 시장 비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일부는 반도체법으로 대표되는 바이든식 산업 정책이 그간 비판하던 ‘중국제조2025’를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제조2025는 2015년 반도체와 바이오, 전기차 등 10개 분야에서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최선두에 서겠다는 정책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제조2025가 중국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핵심 기술 이전을 압박해 기술을 탈취했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그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역시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기업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거센 반발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産)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북미산 최종 조립 요건에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시설 공개와 미국 주도 반도체 연구 동참을 요구한 반도체법 보조금 조건을 두고 기술 유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업도 같은 조건”이라며 동문서답이다.

바이든식 산업 정책은 국가 안보를 앞세워 기술과 시장점유율을 미중 경쟁 무기로 삼으려는 출발부터가 중국과 닮았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반도체법 보조금 공개를 앞둔 지난달 연설에서 “제조업 위축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연구개발과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중국에 기술과 혁신은 단순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던 중국 ‘반도체 굴기’ 지휘자 류허(劉鶴) 전 국무원 부총리의 2021년 연설과 같은 맥락이다.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중국제조2025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부터 중국식 산업 정책 효과에 대한 보고서가 적지 않게 쏟아졌다. 싸우면서 닮아가는 ‘미러링 효과’다.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 색채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바이든식 산업 정책은 아직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미 싱크탱크에선 최근 중국이 이른바 중저가 ‘레거시(보급형) 반도체’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첨단 반도체에 국한된 반도체 규제가 확대·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빠짐없이 강조하는 점은 한 가닥 위안이다. 하지만 미국은 막대한 반도체 보조금을 쏟아부으면서 동맹국엔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반도체 보조금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중국식 노골적 경제 강압 정책까지 닮을까 우려스럽다.

스테퍼니 머피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미국은 두 번째 ‘매카시즘’의 시대를 맞았다”고 했다. 광풍(狂風)에 휩쓸리지 않을 냉정함이 필요한 때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조 바이든#반도체 독트린#중국제조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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