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비 끊자 공사 손놨다”… 타워크레인 태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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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걸릴 일 30분 질질 끄는 등
작업능률 50% 떨어져 피해 속출
정부 “대체기사 확보 등 방안 마련”

자료: ‘건설 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 발언 및 건설업계 취재 종합
#1. 전남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철근콘크리트 업체 김모 씨(61)는 최근 태업에 돌입한 타워크레인 기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월례비를 주지 않자 자재를 일부만 옮겨주거나, 콘크리트 타설 중 작업을 중단해 버리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 김 씨는 “5분 걸릴 걸 30분 걸려 해주니 미칠 노릇”이라며 “10분 정도만 더 타설하면 끝나는 작업도 ‘근무 시간이 끝났다’며 그냥 내려와 버리니 콘크리트가 그대로 굳어버린다”고 했다.

#2. 전국 20곳 건설 현장에 70대 타워크레인을 임대해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임원 권모 씨는 최근 비노조 기사 10명을 채용했다가 노조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권 씨는 “정부의 강경 대응을 믿고 채용했는데 노조가 꼬투리를 잡아 구청 등에 민원 신고를 넣는다”며 “원청 건설사는 공사에 방해되니까 ‘그냥 노조 채용하는 게 좋지 않냐’며 눈치 준다”고 했다.

정부가 이달부터 월례비를 받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최대 12개월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하자 건설 노조가 태업에 돌입하면서 건설 현장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가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개최한 ’건설 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 현장에서는 건설노조를 향한 성토가 쏟아졌다. 이 자리에는 주로 건설 하도급 업체로 이뤄진 전문건설협회 회장단 등 건설업계 500여 명이 참여했다. 행사장에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거부하자’ ‘가짜 근로자 퇴출하자’ 등의 플래카드가 붙었다. 이날 서울·경기·인천 철근콘크리트사용자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84개 업체가 920곳 현장에서 월례비로만 총 1808억 원을 지급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철근콘크리트 업체 관계자들은 타워크레인 기사 태업으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한 건설 현장은 올해 1월 월례비와 OT(추가근무)비 약 4800만 원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타워크레인 작업 능률이 50%로 급감했다고 한다. 기존엔 타워크레인 기사가 콘크리트 타설에 필요한 거푸집을 문제없이 날랐는데 갑자기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했다. 철근콘크리트 업체 임원 임모 씨는 “2시간이면 끝날 일이 4시간으로 늘었다”며 “노조 담당자가 찾아와 ’왜 월례비를 건드려 일을 크게 만드냐’며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대놓고 월례비 요구를 못 하니 편법을 써서 월례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철근콘크리트 업체 관계자는 “노조 기사들이 전화로 하면 기록이 남으니 직접 찾아와 압박한다”며 “‘유령사원’을 만들어 우회적으로 월례비를 달라고 하기까지 한다”고 했다.

정부는 월례비 요구 등 불법·부당행위에 ‘면허 정지’ 처분을 요구할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꽹과리를 치면서 사업장 마비시키는 훈련만 하는 가짜 노조 실태를 파악해 퇴출돼야 할 노조를 싹 정리하겠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태업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체 기사를 확보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원 장관은 “2교대를 돌리든, 원청사가 직고용하도록 하든지 해 현장에 인력 수급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이날 원청인 건설사 책임도 강조했다. 원 장관은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힘든 것은 다 떠넘기고 무슨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냐”라며 “원청사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송진호 기자jino@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월례비#타워크레인#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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