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사후약방문’ 전세사기 대책,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 시급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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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얼마 전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잇달아 터지던 지난해 가입한 전세사기 피해자 온라인 카페를 다시 들어가 봤다.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여러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민간업체 애플리케이션 광고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카페 메뉴에는 원래 없던 상담 코너가 생겼고, 개중에는 유료 상담 코너도 있었다. 어느 업체, 무슨 변호사와 협업한다는 공지도 눈에 띄었다. 세입자들이 원해서 생긴 서비스겠지만 누군가의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장사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아 입맛이 썼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서비스들은 정부가 먼저 제공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전세사기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세입자들에게 ‘안심전세 앱’을 만들어 ‘깜깜이’인 빌라 시세 정보를 제공한다든가, 악성 임대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이 모두 이때 포함됐다.

그때도 늦은 감이 있었는데 안심전세 앱은 민간 서비스가 여럿 나온 뒤인 이달 들어서야 겨우 오픈했다. 그나마도 시세 정보가 정확한지 등을 두고 논란이 나온다. 악성 임대인 정보를 공개한다는 대책은 지난해 9월 이후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다가 지난주에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7월은 돼야 임대인 정보를 세입자들이 안심전세 앱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대책이 나온 지 거의 1년 만이다.

정부가 이달 초 내놓은 전세사기 방지 대책 역시 실망스럽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요건을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100%에서 90%로 낮춘 방안이 대표적이다. HUG의 건전성을 위해 필요한 대책은 맞지만 세입자 보호를 위한 대책인지는 의문이다.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전세가율 80∼90%였던 집도 100%가 되기 쉽다. 대책 실행 이후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세입자들은 계약을 연장할 때 원래 냈던 보증금의 10% 혹은 그 이상을 월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랐으니 월세로 전환해도 괜찮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전세사기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대부분 비싸도 2억∼3억 원 선의 빌라 전세를 사는 이들이다. 낮은 금리로 이용할 수 있는 정부 지원 전세대출을 받는 이들도 많다. 빠듯한 생활비에 월세가 더해지면 이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게 분명하다.

이미 피해를 입은 이들은 어떤가. 보증보험에 가입하지도 못한 이들이라면 경매를 기다려야 하는데, 최근 집값 하락과 전세사기 등으로 빌라 매물이 쏟아지며 웬만해서는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지만 임대인들이 집값 하락이나 급격한 보유세 인상을 예측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고 하면 과연 처벌이 될지도 미지수다.

안전장치 없이 보증보험 제도를 시행하고 내버려둔 정부, 악성 임대인이 양산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을 놨던 HUG, 진작 입법됐어야 할 세입자 보호 법안을 수년간 방치한 국회 모두 전세사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이제라도 모두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시작은 이달 말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일일 것이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
#전세사기 대책#사후약방문#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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