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국 밴드 프렙의 뮤직비디오에 한국이 등장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1일 1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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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apest Flight’로 세계적 인기 끈
영국 4인조 시티팝 밴드 프렙 인터뷰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호텔에서 만난 밴드 프렙. 왼쪽부터 르웰른 압 말딘, 기욤 잼벨, 톰 헤이블록, 댄 래드클리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금이 며칠, 몇 시 인지 몰라요. 새벽 세 시에 인터뷰에 늦은 줄 알고 ‘큰 일 났다!’ 하며 벌떡 일어났어요.”

18일 오전 9시 45분 서울 강남구 포 포인츠 바이 셰러턴서울 호텔 1층 카페.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 흰색 티셔츠에 남색 자켓, 청바지 차림으로 약속 시간보다 15분 먼저 나타난 영국의 시티팝 밴드 프렙(PREP)의 드러머 기욤 잼벨은 깊은 잠을 못 잤다고 했다. 9월 네 번째 EP ‘Back to you’를 발매하고 이달 6일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12일 태국, 16일 필리핀 공연을 마치고 1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의 한국 공연을 위해 전날 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주 동안 네 개 나라를 도는 바쁜 스케줄로 날짜와 시간은 신경 쓰지 않게 된 지 오래다.

“4년 전 첫 단독 내한 공연 때만 해도 매니저가 없어서 멤버들이 호텔 와이파이부터 공연장까지 모든 걸 확인했어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무대 스크린에 노트북 화면보호기가 뜬 적도 있죠. 하하.”(기욤)

오전 10시 보컬의 톰 헤이블록, 기타의 댄 래드클리프, 키보드의 르웰른 압 말딘이 차례로 카페에 모였다. 한 시간 동안 프렙의 음악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약하던 뮤지션이 한 팀에 모이게 된 과정부터 음악을 하는 이유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싱어송라이터 딘이 피처링한 프렙의 곡 ‘Cold Fire’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남자주인공의 뒤로 한국 지하철 노선도가 보인다. 이 뮤직비디오는 한국에서 촬영됐다. 유튜브 캡쳐

인디밴드로 시작한 프렙은 첫 번째 EP ‘Futures’(2016년)의 타이틀곡 ‘Cheapest Flight’가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8년 싱어송라이터 딘이 피처링한 ‘Cold fire’, 새소년의 황소윤과 몬스타엑스의 셔누가 참여한 ‘Don‘t look back’을 차례로 발매해 한국 팬덤도 두터워졌다. 이번은 프렙의 여섯 번째 방한이다.
●“음악 어렵게 들린다면 잘못 만들었다는 뜻”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밴드를 처음 결성한 르웰른(왼쪽)이 멤버들을 가리키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시차와 투어일정에 쫓기는 행복한 혼란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2015년 클래식 작곡가 르웰른과 하우스 DJ였던 기욤이 밴드를 시작해, 힙합 프로듀서 댄과 싱어송라이터 톰이 합류한 뒤 첫 EP를 발매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녹음활동을 하는 스튜디오 밴드를 예상했다. 각기 다른 개성의 런던 뮤지션은 1970년대에 활약한 미국의 록과 재즈 퓨전 밴드 ‘스틸리 댄’(Steely Dan)이라는 관심사로 한데 모였다. 스틸리 댄의 음악처럼 1970~1980년대의 부드러운(Smooth) 팝에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보자는 공통의 목표가 프렙의 시작이었다.

“제 전공은 클래식이었지만 재즈, 일렉트로닉 등 다른 음악들에도 관심이 컸죠. 특히 스틸리 댄에 관심이 많았는데, 런던 한 공연 백 스테이지에서 알게 된 기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도 스틸리 댄의 팬인 것을 알게 됐어요. 클래식 작곡은 혼자 하는 고독한 작업이에요. 스틸리 댄과 같은 음악을 같이 만들어 보자며 기욤과 밴드를 시작했어요.” (르웰른)

프렙이라는 두 글자를 세계에 알린 곡은 첫 번째 EP의 타이틀곡 Cheapest Flight. ‘사랑조차도 가장 싼 비행기표를 구해 떠나려는 내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내용의 신선한 가사, 그루브를 타기 좋은 리듬감, 공중에 흩날리는 듯한 톰의 가볍고 몽환적인 보컬 3박자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리스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스포티파이 등 개인 취향에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은 이들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저희 음악은 굉장히 쉽게 들리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화성 진행과 멜로디는 아주 복잡해요. 그게 청자들에게 어렵고 복잡하게 들려서는 안 돼요. 들었을 때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음악을 잘못 만들고 있다는 뜻일 거에요.”(기욤)

“우리 음악을 설명할 때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Smooth’(부드러운)에요. 프렙의 음악은 어딘가 안심시켜주는 구석이 있어요. 내부는 우울하고 슬프지만 그 세상을 감싸는 테두리에는 희망과 안도감을 주는 빛이 있죠. 그게 우리 음악의 장점이에요.”
●그 어떤 뮤지션의 아류도 아닌, 프렙

그룹명 PREP은 preparation의 줄임말이다. 르웰른(왼쪽)이 무대에 서기 전 “Have you done your prep?”(준비 됐지?)이라는 말을 늘 해서 거기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스무스한 음악’(Smooth Music). 프렙이 지향하는 음악세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음악이 나오기 위해선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 그들은 무엇 하나 억지로 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되 완벽을 기한다. 7년 동안 네 장의 EP와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앨범에 담긴 곡은 30곡이 채 되지 않는다. 숫자로는 소박하지만 한 곡 한 곡 뜯어보면 어느 한 곡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즐기지 않아요.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고 삶을 즐겨야 음악적 영감도 떠오르죠.” (댄)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쓸 때는 마감기한이 있었어요. ‘오늘까지 가사를 주세요’ 하면 하루 동안 정신없이 가사를 써서 보냈죠. 다음날 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반드시 있어요. 그걸 고치면 훨씬 좋아지는데 너무 늦어서 손쓸 수 없죠. 프렙의 작업이 좋은 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완전히 만족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톰)

“‘Pictures of you’라는 곡은 완성할 때까지 5년이 걸렸어요. 저와 기욤이 2015년 데모로 만들었고, 수정을 거쳐 2020년 나온 정규앨범에 담았죠.” (르웰른)

다른 곳을 바라보는 르웰른과 기욤,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톰과 댄.(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들에겐 작정하거나 의도하는 것이 없다. 마음이 가는 곳에 진심을 다하고, 그 뜻에 동감하는 누군가가 그들을 지지한다. 한국과의 인연도 그렇게 찾아왔다. 이들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인 2017년, 서울 마포구 클럽 ‘MODECi’에서 한 DJ가 Cheapest Flight를 틀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유튜브 영상을 접한 프렙 멤버들은 “한국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해 클럽에 연락을 했고, MODECi에서 첫 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2018년 발매된 EP ‘Cold Fire’의 수록곡 ‘Snake Oil’의 경우 국내 영화감독들이 프렙에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들이 보낸 이미지들이 정말 맘에 들었어요. 저희도 흔쾌히 좋다고 했고, 이들의 영상이 공식 뮤직비디오가 됐죠.” (르웰른)

한국 영화감독들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먼저 프렙 측에 제안했던 곡 ‘Snake Oil’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유튜브 캡쳐

‘Steely Dan-type Project’(스틸리 댄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프렙은 그 어떤 뮤지션의 아류도 아닌, 프렙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우울하면서도 희망적인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이들의 설명처럼, 프렙의 음악은 삶의 희비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멤버들에게 “음악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돈! 농담이다. (웃음)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joy)이다. 이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댄)

“무대에서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이다. 라이브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단순히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포용(embrace)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상상치 못했던 곡에서 사람들이 호응을 하면 그 에너지가 프렙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기도 한다.” (톰)

“솔직히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 프렙을 시작하기 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도 했었는데, 프렙을 시작한 뒤로 접었다. 이게 내 갈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르웰른)

“좀 오글거리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음악을 택했다기보다는 음악이 날 선택했다. 난 그저 그 선택을 따를 뿐이다.” (기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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