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표 16만원 고가 논란 수요 따라 가격 변동 검토해야[광화문에서/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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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오가는 고물가 시대다. 그 여파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뮤지컬 업계에선 티켓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VIP석=15만 원’ 공식이 깨졌다. 카카오M이 인수한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가격을 16만 원으로 책정한 것. 팬들은 “커플이 뮤지컬을 보려면 30만 원 넘게 필요하다”, “연말에 4인 가족 관람은 어려울 것 같다”는 원성을 쏟아냈다.

최근 4년간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7만(A석)∼15만 원(VIP석)을 유지했다. 작품별로 제작비가 달라도 경쟁작들이 내건 티켓 가격대를 맞췄다. ‘시장의 통상 가격’을 따른 셈이다.

쇼노트의 행보에 다른 제작사들도 티켓가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 제작자는 “욕을 먹을까 봐 선뜻 티켓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많은 제작사들이 VIP석 16만 원 책정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팬들의 아우성에 제작사들은 “물가가 다 올랐지 않느냐”며 억울해한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들여다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을 로열티를 내고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오거나 대본과 음악, 의상, 무대세트, 자잘한 소품까지 해외 프로덕션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레플리카 작품이 상당수다. 1400원대를 향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제작사의 아우성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크게 제작비(대관료+배우 개런티+인건비 등), 공제비용(로열티+티켓 수수료 등), 제작사 수입의 3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정 티켓가는 정해져 있고 작품별 제작비는 다르다 보니 제작사는 손익분기점을 정한 뒤 VIP석, R석, S석, A석 등 좌석의 비율로 수익을 맞춰 왔다. 극장 1층 전체를 VIP석으로 정한 공연도 있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VIP석 비율을 높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게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1인당 16만 원의 티켓 가격은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다. 간만에 문화생활을 해볼까 마음먹었다가도 통장 잔액을 보며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임에 틀림없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는 티켓 가격을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한다. 관객이 많으면 값을 올리고, 적으면 할인하는 ‘가격 탄력제’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 공연 시작 2시간 전 추첨을 통해 남은 VIP석을 할인하는 로터리 티켓 제도와 최대 75% 할인가에 즐기는 입석 티켓 제도도 운영한다. 주중 티켓 가격은 주말보다 저렴하다. 1000석 이상 대극장용 공연이면 천편일률적으로 ‘VIP석=15만 원’을 적용하는 한국에선 흥행 작품은 수익을 내지만, 흥행 실패작은 좌석을 채우지 못해 손해를 보기 일쑤다. 이참에 한국 뮤지컬 시장에 가격 탄력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수익을 맞춰야 하는 제작사에도 유리하고, 관객에겐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뮤지컬 표#고물가 시대#심리적 마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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