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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vs 대안민국

입력 2022-06-27 03:00업데이트 2022-06-2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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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진실 시대, 한반도 남쪽 두 개 나라
대안현실 세상에선 정권교체 안돼
국회·공공기관장·검수완박도 내 것
피살·북송, 팩트도 목적에 봉사했나
박제균 논설주간
탈(脫)진실의 시대. ‘탈진실(Post-truth)’이란 용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진실은 중요치 않고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세상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무시되는 세상엔 조작된 정보와 대안현실(Alternative reality)이 판친다. 뻔히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의 현실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직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대한민국도 드라마틱하게 탈진실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창궐한 허위정보와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 팽배한 대안현실의 세상을 돌아보라. 북한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가상현실에 빠져 외교안보 정책을 말아먹은 결과가 어떤가. 핵 포기는커녕 문 정권 5년 동안 김정은은 핵·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킨 뒤 이제 7차 핵실험의 단추를 누르려 한다.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가 성장할 거라는 ‘소주성’은 어떤가. 이제 전 정권 사람들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는 ‘듣보잡 정책’이자 경제정책사(史)에 기록될 코미디다. 탈원전과 주52시간 등 대안현실을 진짜라고 믿은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국정(國政) 곳곳에 질러놓은 정책 실패의 덩어리들은 이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국민에게 청구서를 들이민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이런 대안세상은 정상화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한반도 남쪽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대한민국과 대안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대안민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윤석열이지만, 대안민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문재인이다. 대안민국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도 내 것이고, ‘검수완박’도 내 것이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니 공공기관장도 물러날 필요가 없다. ‘알박기’가 아니라 법에 정한 임기요, 권리다. 그 나라에선 문재인은 성공한 대통령이고, 위선의 조국은 검찰개혁의 희생자다. ‘세월호의 진실’ 역시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문 정권 5년을 포함해 무려 7년 동안 9번이나 조사를 했어도 진상은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이 북한 공격에 의해 폭침됐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북한이 그런 잔학무도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다. ‘미(美) 점령군과 친일세력의 합작’으로 탄생했고, 이후엔 친일파와 사이비 보수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과 싸우는 대안민국 사람이라면 뭘 해도 용서가 된다. 변명이 더 낯 뜨거운 ‘짤짤이’를 입에 올려도 문제될 건 없다. 모두가 한편인 ‘대안민국 만세’다.

진짜 현실과는 다른 이런 대안현실들이 모여 대안민국을 이룬다. 오직 팩트(fact)만이 대안현실을 깰 수 있건만, 대안민국에서 팩트는 중요치 않다. 가뜩이나 SNS에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탈진실의 시대에 지난 5년간 대안현실을 진짜 현실로 믿도록 팩트를 왜곡하고 통계를 분식(粉飾)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몰이 의혹이나 탈북어부 강제 북송 사건이 그런 것들이다. ‘월북이면 좋겠다’는 기대가 ‘월북인 것 같다’는 추정으로, 결국엔 ‘월북이 맞다’는 확신으로 변질돼 간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양념을 치듯, 팩트를 조금 비틀어도 상관없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운동권 논리에 젖은 그들은 ‘팩트도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은 게 아닐까.

팩트를 무시하는 탈진실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자국에 헬리콥터로 달러를 퍼부어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세계가 달러화에 기대 결국 달러 가치만 높아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뛰어도 닥쳐온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를 넘길까 말까다. 문 전 대통령 표현대로 ‘이쪽’과 ‘저쪽’, 우리 편과 너희 편, 대한민국과 대안민국으로 분열해선 ‘퍼펙트 스톰’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없다. 전 정권이 파놓은 분열의 골을 따라 흐르는 넓고도 깊은 강. 이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윤석열 대통령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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