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2차 가해 발언보다 차가운 침묵이 더 무서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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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공정이란,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시시비비를 가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는 고사하고, 되레 나의 말을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최근 자신의 당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27)는 “피해 호소 당일 당 대표가 사실상 상황을 종료했다”며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이해관계보다 옳은 것, 진실이 더 중요하고,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밝히는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진상조사를 안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상조사를 하려면 담당 기구가 있어야 하고, 제가 출석해 공식적으로 진술을 해야 하잖아요. 양측 주장의 사실관계도 확인하고요. 그런 과정은 없었어요.”

―이동영 당 수석대변인은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고 브리핑까지 했는데요.

“성폭력이 벌어진 다음 날인 작년 11월 21일 배복주 당 젠더인권특별위원장에게 성폭력을 알리면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어요. 그 다음 날 열린 회의에서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그건 진상조사가 아니잖아요. 여영국 당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피해 호소 당일에 사실상 종결됐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그런데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니….”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당시 심상정 대선 후보, 이정미 전 당 대표도 있었는데요.

정의당 지도부가 지난해 1월 김종철 당 대표 성추행 사건 후 개선책을 발표하고 있다(왼쪽부터 김응호·배복주 당 부대표,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동아일보DB
정의당 지도부가 지난해 1월 김종철 당 대표 성추행 사건 후 개선책을 발표하고 있다(왼쪽부터 김응호·배복주 당 부대표,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동아일보DB
“심 후보는 중간에 자리를 떠서 잘 모르겠는데… 별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나, 참 심각하다 이런 정도의 반응만 있었고….” (당신은 왜 그때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서… 대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 저 때문에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게 두려웠어요.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때도 괜히 문제를 제기해서 당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되레 피해자(장혜영 의원)를 탓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장혜영도 그러더니 강민진도 저러네, 그것도 대선을 앞두고… 그런 말을 듣는 게 두려웠어요.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정의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왜 6개월이나 지난 지금 공개한 겁니까.

“살고 싶어서… 더 이상 가슴에 묻고 얘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살려고 말했어요.”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것도 일단 살아야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당이 제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 날(이달 17일) 2차 가해가 난무한 입장문을 발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정의당에서는 이제 저를 거의 끝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심상정 류호정 의원 등은 함께 나서줄 만도 한데….

“아직….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은 2차 가해 발언보다 차가운 침묵이 더 무서워요.” (차가운 침묵?) “적극적으로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폭력 아닌데 허위 주장한다고도 하고, 또 정치적 의도 때문에 저런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더 많은 당내 분들은… 침묵이에요.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당 홈페이지에는 즐거운 선거운동 사진만 있고. 이제는 뉴스도 많이 안 나오니까 이러다 보면 지나갈 거라 생각하나 봐요.”

―당 대변인은 당신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했다고 브리핑을 했던데요.


“저는 성폭력이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지도부 회의에서도 가해자가 제 허벅지 안쪽을 만졌고, 피하려고 (밖으로) 나오니까 계속 따라왔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이게 성폭력이 아니면 뭔가요? 성폭력이 아니면 제가 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겠어요. 그런데 이달 16일 제가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자 바로 다음 날 당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하더군요. 이 사건이 가해자가 제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저를 밀치면서 일어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었다고요.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가해자가 쓴 말이에요. 가해자의 용어를 당이 대신 쓰다니… 그리고 언론에 가해자의 사과문을 배포했어요.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는 “지도부가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고민하고,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랐다”며 “하지만 내부문제에 대해서는 가해자 사과문을 대신 언론에 배포해주는 등 오히려 2차 가해를 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는 “지도부가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고민하고,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랐다”며 “하지만 내부문제에 대해서는 가해자 사과문을 대신 언론에 배포해주는 등 오히려 2차 가해를 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다시 물어서 미안한데, 그럼 당은 왜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가해자가 제 허벅지를 만져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마침 다른 여성 청년분이 옆자리로 왔어요. 그분도 당할까봐 안 들리게 ‘지금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설마 성적인 의도는 아니겠지만 당신도 조심해라’라고 얘기해줬어요. 다음 날 배복주 위원장과 통화하면서, 내가 어제 사건 당일은 너무 당황해서 성적 의도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충격적이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럼 당이 당신이 옆자리로 온 여성에게 했다는 말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당은 공식 절차 대신 경고와 서면 사과로 조치한 것도 당신 요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만.

“좀 말장난 같은데… 배 위원장과 통화할 때 가해자에게 분명한 경고와 제지가 필요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치할지는 지금 판단이 잘 안 서니 당이 함께 고민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지도부 회의도 그런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고요. 그런데 그건 당이 공식적인 절차는 밟지 않아도 되고, 당 대표가 구두로 경고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사과문은 왜 받은 겁니까.

“…지도부 회의가 끝난 뒤 가해자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가 왔어요. 사과하겠다고. 당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에요. 너무 놀라서 배 위원장에게 지금 너무 힘드니까 연락이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배 위원장이 당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받고 제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후인가? 배 위원장이 사과문을 전해줘서 받았어요. 그리고 그냥 수용한다고 했어요.” (마치 용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한테 가해자 사과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그 사람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빨리 잊고만 싶었던 상황이라 사과문을 받아서 더 이상 연락이 안 올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사과문 내용이 뭐든지 상관없었어요.”

―정리하면 진상조사 없이 피해 사실을 들은 그날 당 대표가 상황을 정리했고, 6개월간 아무 조치가 없다가 이달 16일 폭로하자 작년에 했던 말 중에 필요한 부분만 따서 성폭력은 없었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당 대표가 개인적으로 가해자에게 경고해 달라고, 또 사과문을 받으면 끝내겠다고 한 적이 없어요. 당 입장문을 보면 피해자인 제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는 다 삭제되고 가해자의 목소리만 남겨둔 것 같아요.” (혹시 수사 의뢰 생각은 안 했습니까.) “일단 당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 만약 가망 없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당에 바랐던 건 뭡니까. 당신이 알던 정의당이 아니라고 했던데요.

“제가 바랐던 건, 지도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해줬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피해자의 충격과 두려움, 문제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랐지요. 그런 뒤에 가해자를 어떻게 조치할지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또 당의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도 모색하는…. 그런데 되레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은 한 방울도 없고, 오히려 성폭력이 아니라고 가해자를 옹호하니….”

―정의당이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이유가 뭡니까.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의당에는…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그런 악순환이 있어요. 제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안들 중에도 그런 게 많아요.”

―지금 제일 아픈 게….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운동을 했고 그게 정치까지 이어졌는데… 세상에는 이해관계보다 옳은 것, 진실 이런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게 제가 정의당에 들어간 이유지요. 그게 흔들리니까…. 제가 더 정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여성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강민진(27) 10대 때부터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 활동한 청년 여성 정치인. 2015년 정의당에 입당한 뒤 청년대변인을 맡았고, 지난해 3월 당 내 당인 청년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정의당#2차 가해 발언#차가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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