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인간 존엄’과 헌법학 개척”…김철수 교수 별세에 제자들 추모 물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7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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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항상 존중하고, 유신정권 시절에도 학생들을 보호하며 한평생 ‘인간 존엄’과 헌법학을 개척하셨다.”

국내 헌법학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한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26일 향년 89세로 별세하자 제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스승을 기렸다.

● 정치권 유혹 거절하고 후학 양성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1961년 뮌헨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1971년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다 이듬해 교수로 부임한 고인은 성 전 총장, 김문현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양건 전 감사원장, 김효전 동아대 명예교수, 김상철 전 서울시장, 고승덕 전 국회의원 등을 제자로 뒀다. 법조계에선 “같은 세대 헌법학자 중 가장 많은 후학을 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승을 따라 헌법학자가 된 성 전 총장은 “독일 유학을 다녀온 김 교수님은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며 헌법에 ‘인간 존엄’을 포함시킨 것에 주목해 국내 연구를 이끌어오셨고, 지난해에도 저서 ‘인간의 권리’를 통해 인간 존엄에 대해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성 전 총장은 또 “김 교수님은 정치권에서 ‘정치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여러 번 받았지만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집중하셨다”고도 했다.

국내 최초로 국제헌법학회 세계학회(IACL) 부회장을 맡은 고인은 한국공법학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탐라대 총장 등을 역임하며 헌법해석뿐 아니라 헌법철학, 헌법정책학 등으로 한국헌법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1993년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법대생과 법학자의 필독서인 ‘헌법학개론’을 비롯해 ‘헌법질서론’ ‘헌법학’ ‘위헌법률심사제도론’ 등 20여 권의 책과 4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고인은 헌법학개론에서 유신헌법에 대해 ‘공화적 군주제’라고 서술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일주일 간 연행되고 책이 압수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고인은 1993년 서울대 법학지의 화갑기념대담을 통해 “개필을 하지 않으면 풀려날 수 없어 개필을 약속한 뒤 아주 조금만 고쳐 또 출판을 했더니 다시 교과서가 몰수되고 출판이 금지됐다. ‘유신을 찬양하는 방향으로 고쳐 서술하라’고 연락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 헌법재판 기틀 닦고 헌재 자문위원 역임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고인은 사법부의 독립과 위헌법률 심사권 행사를 주장했고, 이는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유학 시절 경험으로 위헌법률 심사 제도를 연구해 헌재가 설립된 이후 헌재 자문위원을 지냈다. 그의 제자인 황 전 사회부총리도 헌재 설립 후 연구부장을 지냈다.

후학 중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헌법학자가 된 제자 양건 전 감사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김 교수님을 모시고 헌재 설립과 역할을 담은 ‘6인 교수 헌법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군사정권의 재등장으로 빛을 보지 못했고 김 교수님은 체포령 속에 도피생활을 하셔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고인과 각계의 노력으로 1987년 헌법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설립됐다.

● 제자 돌잔치까지 챙기는 각별한 제자 사랑


고인은 제자들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교에게 자료 정리 등을 지시할 때도 항상 부탁하는 말투로 공손하게 이야기했고, 제자 자녀들의 돌잔치까지 챙길 정도로 제자 사랑이 각별했다고 한다. 제자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며 구순 기념 논문집을 준비하던 이효원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학문과 교육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갈 길을 이끌어주셨다”며 “지난해에도 1000쪽에 달하는 저서를 출간하실 정도로 학문에 열정이 깊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김 교수님은 마지막까지도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고 우려하셨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옥경 씨, 자녀 정화·수진·수영·수은·상진 씨, 사위 박영룡·장영철·우남희 씨, 며느리 김효영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8시다. 02-3779-1918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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