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 4∼5만명 거주 추정
국회서 입국 지원 법개정 추진
러시아의 침공으로 민간인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무국적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외동포 단체들은 “무국적 고려인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나섰고 국회에선 이들을 지원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는 무국적 고려인 수만 명이 살고 있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는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들은 4만∼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정확한 인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적이 없어 교육은 물론이고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전쟁 피해를 입어도 호소할 곳조차 없는 ‘그림자 신분’이어서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국적 고려인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1800년대 후반 항일독립운동가 등 많은 조선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들은 1937년 옛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고 당시 소련 연방국가 가운데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에 흩어져 살았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상당수의 고려인은 ‘고본질’이라는 계절농업에 참여했다. 고본질이란 농번기에 팀을 이뤄 집을 떠나 농지를 임차해 농사를 지은 다음 이익금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걸 뜻한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 살던 고려인들은 농지가 넓고 비옥한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고본질을 많이 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고본질에 참여했던 고려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고려인들에게 국적 회복 신청 기간을 부여했지만 시골에서 지낸 탓에 신청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광주고려인마을의 한 관계자는 “무국적 고려인의 경우 후손들까지 무국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광산갑)이 외교부와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재외동포는 1만3524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현지에서도 무국적 고려인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무국적 고려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이 의원은 무국적 고려인의 국내 입국을 가능하도록 한 법률(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재외동포 포용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국적을 상실한 동포를 포용하고 동포 아동과 청소년의 사회 적응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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