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월세 세입자 3명중 1명… 재계약 때 갱신권 못 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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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신고제 이후 작년 6~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전수분석
주변 전셋값 급등-집주인 요구에… ‘임대료 인상 5% 제한’ 권리 포기
월세 세입자는 46%가 행사 못해… 전세금 20% - 월세는 30% 올라

서울 아파트 전월세를 재계약한 10명 중 3명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해 6~11월 서울에서 전월세 계약이 가장 많이 이뤄진 서울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경. 대우건설 제공
서울 아파트 전월세를 재계약한 10명 중 3명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해 6~11월 서울에서 전월세 계약이 가장 많이 이뤄진 서울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경. 대우건설 제공
서울 강동구 고덕동 20평대 아파트(전용면적 59m²)에 전세 살던 50대 A 씨는 지난해 9월 반(半)전세로 돌려 재계약했다. 기존 보증금 5억 원은 유지하되 월세 150만 원을 추가하는 조건이었다. “계약갱신요구권(갱신권)을 쓰면 들어가 살겠다”는 집주인의 엄포에 갱신권을 포기했다. 그는 “아이들의 대학입시가 끝날 때까지 동네를 떠날 수 없는데, 인근 전셋값이 2배 가까이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를 재계약한 세입자 3명 중 1명은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에 보장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약한 월세와 전세금은 기존 계약보다 각각 30%, 20% 올라 이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0일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된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6만3143건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 기간 기존 전월세 계약을 갱신한 거래(2만3707건) 중 세입자가 갱신권을 포기해 전월세 가격이 5% 이상 오른 거래는 전체의 32.2%였다. 특히 월세 재계약을 한 세입자들의 46.2%는 갱신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권은 세입자가 기존 계약을 한 번 연장할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로 2020년 7월 시행된 개정 임대차법의 핵심이다. 전월세 가격 인상률이 기존 계약 대비 5%로 제한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가 합의하면 5%를 초과해 재계약할 수 있다.


분석 결과 갱신권을 포기한 세입자의 평균 월세는 기존 66만 원에서 86만 원으로 30.3% 올랐다. 재계약한 아파트의 전세금도 기존 4억4918만 원에서 5억3822만 원으로 19.8% 올랐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세입자 보호를 내건 임대차법이 전셋값 급등과 월세 비중 증가를 초래했다”며 “임대차법 시행 2년이 되는 올해 7월 말부터 기존 재계약이 신규 계약으로 전환되면 전월세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 못가요” 전월세 갱신권 포기, 월세 30%-전세 20% 부담 늘어


서울 아파트 6만3143건 거래 분석… 집주인들 “실거주하겠다” 종용
주변 시세 급등에 울며겨자먹기… 재계약 세입자 32%, 5%넘게 올려
신규계약 월세 평균 103만원선… 4인가구 월 소득의 20% 달해
임대차법이 되레 세입자 부담 가중… 올 7월 계약때 또 전월세 급등 우려



#1.
서울 성동구 옥수동 신축 대단지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김모 씨는 지난해 12월 공인중개사로부터 “집을 나갈지, 계약갱신요구권(갱신권)을 포기하고 계속 살지 결정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세금 4억 원은 그대로 두고 월세 100만 원을 추가해 재계약하자는 것. 공인중개사는 “2년 전 시세로는 전월세 못 구한다”며 “재계약 10건 중 절반은 갱신권을 쓰지 않는 게 요새 관행”이라고 설득했다. 김 씨는 주변 전세 시세가 2배 가까이 오른 탓에 별수 없이 집주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2.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전월세신고제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재계약된 전월세 계약이 71건으로 이 중 갱신권을 포기한 거래가 30건이었다. 월세로 재계약한 거래 16건 중에서는 갱신권을 행사하지 않은 계약이 11건이나 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유세 부담이 늘어서 반(半)전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다”며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90만 원이던 전용면적 84m² 매물은 최근 월세만 120만 원으로 올려 계약했다”고 전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에 접어들었지만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세 재계약이 늘고 신규 전세가격이 안정됐다며 전월세 시장이 안정세라고 밝힌 정부 시각과는 괴리가 있었다.
○ 재계약 월세, 절반은 갱신권 사용 못 해
동아일보 취재팀이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올라온 지난해 6∼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월세일수록 갱신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월세로 재계약한 거래 중에서 갱신권을 못 쓴 거래는 절반에 가까운 46.2%였다. 평균 보증금은 3억4760만 원, 월세는 86만 원이었다. 보증금에 법정 전월세 전환율인 3%를 적용해 순수 월세로 환산하면 세입자는 월 173만 원을 부담하는 셈이다.

갱신권을 사용한 재계약의 월세 인상률은 3%대로 낮았다. 하지만 평균 월세 자체는 93만 원으로 갱신권을 포기한 재계약보다 오히려 높았다. 기존에 낮은 월세를 받고 있던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설득해 갱신권을 못 쓰게 하고 월세를 대폭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세 중 갱신권을 쓰지 않은 거래는 전체의 28.1%로 월세보다는 비중이 작았다.

부담이 큰데도 세입자들이 갱신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장기 거주하는 집의 특성상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월세 시세가 대폭 오른 상황에서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나오면 다른 곳을 찾기 어렵다. 서울 강남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학생 자녀를 둔 집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과 갱신권을 안 쓰기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입자들이 먼저 ‘갱신권을 쓰지 않는 대신 월세를 조금만 올려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학군이 좋아 세입자가 이사를 꺼리는 지역일수록 갱신권을 안 쓰는 관행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새로 계약하면 월세 평균 100만 원

정부는 전월세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연일 강조한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말 ‘부동산 시장 안정 방안’을 통해 “신규 전세 계약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달 “임대차법 시행 이후 최다 매물이 나오고 가격 상승세도 지속적으로 둔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흐름이 계속되면서 전월세 가격 상승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임대차법 시행 만 2년을 맞는 올해 7월 말부터 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들이 다시 시장에 나오면 그간 급등한 전월세 가격에 맞춰 집을 구해야 한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다주택자 대다수는 보유세 부담 때문에 신규 계약을 반전세로 하려 한다”며 “기존 전세 계약을 맺은 집주인들도 반전세를 고려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 신규 계약 세입자의 월세 부담은 평균 103만 원으로 재계약보다 더 높았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512만 원이다. 소득의 약 20%를 매달 월세로 부담하는 셈이다.

월세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월세 가격을 5% 미만으로 올린 ‘상생 임대인’에게 양도세 비과세 요건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1주택자만 대상인 데다 올해까지 한시 적용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의 입주 물량은 올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전월세 시장에 신규 공급이 부족하다”며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다주택자에게도 초점을 맞춰 공급을 늘리고 기존 임대차법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전월세#재계약#갱신권#전월세신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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