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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50년 내공’ 오영수, 콧대 높은 골든글로브와 ‘깐부’ 맺다

입력 2022-01-11 03:00업데이트 2022-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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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깐부 할아버지, 골든글로브 품다
오영수, 한국배우 첫 남우조연상
‘오징어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열연한 배우 오영수(78·사진)가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가 올해 79회를 맞은 이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영화 ‘기생충’(2020년), ‘미나리’(2021년)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오 씨가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면서 한국 콘텐츠 및 배우가 3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 기록을 세웠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9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오 씨의 수상을 알렸다. ‘깐부 할아버지’로 불리는 오 씨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라고 밝혔다.

‘오징어게임’의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작품상, 배우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한국 작품과 배우로는 처음 이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연극만 200여편 ‘조미료 안 치는 배우’… 美드라마 출연 백인들 제치고 영예
수상 소식에도 대학로 연습실 지켜… “이제 세계 속 우리 아닌 우리 속 세계”


9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턴 호텔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오영수가 호명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게티이미지코리아
10일 오전 11시 골든글로브 홈페이지에 익숙한 얼굴을 담은 사진이 나타났다. 치아를 훤히 드러낸 채 밝게 웃는 백발의 동양인, 오영수(78)였다. 그의 머리 위에 TV드라마 남우조연상 수상자라는 영어 문구가 선명했다. 오 씨는 올해 골든글로브의 개인 수상자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 백발의 배우, 세계의 중심에 서다
배우 오영수가 ‘오징어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아 극 중 첫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은 오 씨는 이날 ‘더 모닝 쇼’의 빌리 크루덥과 같은 시리즈의 마크 듀플라스, ‘석세션’의 키런 컬킨, ‘테드 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경쟁자들은 모두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 백인 배우였다. 오 씨는 이날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고 밝혔다.

오 씨는 ‘오징어게임’에서 목숨이 걸린 구슬을 기훈(이정재)에게 건네며 “우린 깐부잖아”라고 말해 ‘깐부’라는 단어를 대유행시켰다. 그는 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다가도 사람들이 서로 죽이려 하자 “그만해!”라고 절규하는가 하면 충격적인 반전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날 그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축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정신이 없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 프로이트 역으로 출연 중이라 평소처럼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 ‘3월의 눈’을 함께 작업한 손진책 연출가는 “오영수는 조미료를 안 치는 배우라 매 연기마다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현재 그와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번갈아 맡은 신구는 “골든글로브 후보로 지명됐는데 들뜨지 않더라. 수십 년간 쌓인 내공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에 함께 출연한 이병헌도 인스타그램에 “프론트맨입니다, 브라보!”라고 올렸고 이정재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생님과 함께한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세계무대에서 큰 감동을 만들어냈다”며 축하했다.
○ 50여 년 연기에 헌신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에서 노스님 역으로 등장한 배우 오영수. 동아일보DB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지난해 12월 오 씨를 후보로 지명하며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연극배우 중 한 명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가장 놀라운 존재로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87년부터 23년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50여 년간 ‘피고지고 피고지고’, ‘템페스트’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백양섬의 욕망’에서 앙젤로 역으로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1980년)을 수상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오징어게임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과 긴 시간 연기에 기울인 헌신을 아울러 상을 수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인종차별 논란이 계속되자 HFPA가 수상자 인종 안배에 노력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턴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은 인종차별, 스폰서 논란으로 배우 감독 제작자가 불참해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매년 시상식을 생중계하던 미 NBC도 이번에는 중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골든글로브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수상자가 순차적으로 공지됐다. 극영화 부문 작품상은 ‘파워 오브 도그’에 돌아갔고 제인 캠피언 감독은 이 영화로 감독상도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니콜 키드먼(‘빙 더 리카르도스’), 남우주연상은 윌 스미스(‘킹 리처드’)가 수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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