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요금 1300원 때문에 사기꾼 취급 받는 국가유공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월남 참전 상이군인 6급 곽모 씨, 버스서 유공자교통카드 결제 안 돼
얼굴 나온 국가유공자증 제시했으나 버스기사 ‘사기꾼’ 등 막말하며 거부
곽 씨, 명예훼손으로 버스기사 고소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상이군인 곽모 씨(73)가 자택에서 상이군경증과 유공자교통카드 등을 보여주고 있다. 곽 씨는 최근 부산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다가 기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상이군인 시내버스 무료승차를 위해 올해는 국비 84억 원이 지원됐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상이군인 곽모 씨(73)가 자택에서 상이군경증과 유공자교통카드 등을 보여주고 있다. 곽 씨는 최근 부산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다가 기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상이군인 시내버스 무료승차를 위해 올해는 국비 84억 원이 지원됐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내 삶이 버스요금 1300원 가치도 안 되는 것일까요.”

베트남전쟁에 2년간 참전해 상이군인 6급 판정을 받은 곽모 씨(73)는 29일 동아일보와 만나 이같이 푸념했다. 국가유공자 예우 차원에서 시행 중인 시내버스 무임승차를 이용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곽 씨는 15일 낮 12시 25분경 부산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항역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면서 갖고 있던 ‘국가유공자교통카드’(교통카드)를 결제 단말기에 댔다. 교통카드는 이날 오전 재발급 받았다. 이 때문에 전산 처리에 시간이 걸려 무료 탑승을 승인하는 “고맙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얼굴 사진이 있는 ‘상이군경회원증’과 ‘국가유공자증’을 보였지만 기사는 “어디서 장난치고 있어? 사기 아니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무임 6급’이라고 적힌 카드 뒷면도 보여줬지만 기사는 막무가내로 다른 승객들 앞에서 무안을 줬다고 했다.

종점의 시내버스 회사 사무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했으나 다른 직원까지 “사기”라며 으름장을 놓는 탓에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귀가를 위해 다른 버스회사 차고지로 간 곽 씨는 이런 일이 또 벌어질까 봐 사무실 직원에게 앞선 상황을 설명했고 “우리 회사는 그런 일 없다”는 말을 듣고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이 기사도 “제시한 카드만으론 무임승차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무안을 당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상이군인의 버스 무임승차 서비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자가용 승용차 보유가 늘고 버스 이용량이 줄면서 운수회사 차원의 자율적인 무임승차 서비스는 사라졌고 2007년부터 보훈처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보조금을 지급해 상이군인이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한다. 올해 지급된 예산은 84억 원.

자가용 승용차가 있는 곽 씨는 주차하기 어려운 곳에 갈 때만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곽 씨는 자신이 당한 문제를 방치했다간 상시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국가유공자 동료가 피해를 볼 거라고 여겨 대한상이군경회 사하구지회를 통해 버스회사에 다시 해명을 요구했으나 끝내 사과는 못 받았다.

이에 곽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비참한 국가 상이 유공자 탄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하경찰서에 버스기사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고소인 조사는 끝냈고 기사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곽 씨는 1969∼1971년 베트남전쟁에서 육군 작전병으로 참전한 후 장애1급 판정을 받았다. 고엽제 후유증과 고관절 괴사 등으로 여덟 번에 걸쳐 수술을 했고 귀를 심하게 다쳐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곽 씨는 “무임승차 거부를 여러 번 겪었다”며 “카드 결제가 안 돼 상이군경증을 내밀면 카드를 주워 공짜로 버스를 타려는 모리배 취급을 한다”고 토로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역에 발급된 국가유공자 교통카드는 후불식(신용카드·마을버스 연계해 이용 가능) 7662개, 선불식(시내버스만 가능) 4491개 등 총 1만2153개다. 곽 씨 같은 상이군인뿐 아니라 애국지사 및 4·19혁명 공로자 등 8개 부류의 유공자가 사용한다.

부산시 버스운영과 관계자는 “재발급 카드가 버스 단말기에 인식되는 데 이틀 정도가 걸리기에 상이군경증을 보여주면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며 “버스운송사업조합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사 교육을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버스 회사 측은 “양측이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이 격해져 소통이 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상이군경회 부산시지부 김철한 지도부장은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일반인은 ‘감사합니다’, 유공자는 ‘고맙습니다’라고 안내돼 은연중에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든다. 국가유공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월남 참전#버스요금#국가유공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