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12회 ‘로또 명당’에 거는 실낱 희망… “1주일 버티는 힘”

세종=김형민 기자 입력 2021-10-02 03:00수정 2021-10-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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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코로나로 더 고단해진 삶, 로또 찍는 서민들
저마다 간절한 대박의 꿈… 불황에 복권 판매액 최고치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5가의 복권방. 5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 사람들이 신중하게 로또 번호를 용지에 적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올해 상반기(1∼6월) 복권 판매액은 역대 최대로 늘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당첨되면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지난달 27일 오후 5시경 배달 오토바이가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에 있는 A복권방 앞에 멈췄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배달원은 헬멧도 벗지 않고 복권방으로 들어서 로또 5000원어치 한 장을 사 지갑에 접어 넣었다. 그는 배달 장소가 이 근처로 지정될 때마다 복권방을 찾는다. 왜 이곳에서 로또를 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가게 앞에 붙은 플래카드를 가리켰다.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는 ‘1등 당첨 12명’. “내가 저 12라는 숫자를 13으로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잖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는 가게들이 문을 닫아 썰렁한 종로5가 거리. 복권방에는 사람이 붐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게를 접은 자영업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은 물론이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주부들까지 다양한 서민이 복권을 찾고 있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누군가는 수천억 원을 벌고, 수십억 원의 퇴직금을 챙기는 세상에서 경영난과 취업난, 부동산 가격 급등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어렵사리 번 돈으로 복권에 투자하고 있었다. ‘800만분의 1’(로또 기준)이라는 실낱같은 당첨 확률에 기댄 채로. 올해 상반기(1∼6월) 복권판매액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한 푼이 아쉬운 이 어려운 시기에 복권을 찾는 이들은 왜 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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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대출 끊겼지만 로또만은 포기 못해”

이 복권방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장석만 씨(55)는 오전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 반까지 복권을 판다. 그의 가게는 ‘연중무휴’다. 복권 판매점의 대부분이 문을 닫는 일요일조차 문을 연다. ‘일요일에 꼭 복권을 사야 하는데 왜 문을 닫나’라고 항의하는 손님이 많아서다. 장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특정한 요일을 정해 두고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로또를 사는 손님들이 있다”며 “일요일에만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어 쉬고 싶어도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복권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코로나19 이후 얼어붙은 종로 상권에서 복권방들은 ‘나 홀로 성황’이다. 종로구의 또 다른 복권방 사장은 “주 52시간제 시행에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강화되면서 이 일대에 중장년층 유입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그래도 우리 가게 손님은 줄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아졌을까. 복권방에서 만난 자영업자 오모 씨(58)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을 ‘로또 데이’로 정해두고 로또를 사고 있다. 운영하던 가게 수익이 코로나19 타격으로 급감했고 은행 대출도 더는 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 절망적이지만 로또가 유일한 기대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오 씨는 “경기가 나빠진 작년부터 매주 로또 사는 걸 거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누구나 대박을 꿈꾸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복권이다. 오 씨는 몇 해 전 눈앞에서 ‘1등 당첨’ 기회를 놓쳤다고 믿고 있다. 그의 꿈에 복권 당첨번호 여섯 자리가 나타났는데 잠에서 깬 뒤 네 자리만 기억났던 것. 그 주에 바로 종로의 한 복권방으로 달려가 복권 1만 원어치를 샀다. 복권 여러 장에 꿈에서 본 네 자리를 동일하게 적고 나머지 두 자리엔 각각 다양한 수를 적었다. 오 씨는 “당첨 발표일에 확인해보니 꿈에서 나타난 네 자리는 맞혔는데 나머지는 틀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복권 사는 이들의 절박감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조사한 ‘2020년 복권 인식 조사’에 따르면 복권 구매 이유에 대해 ‘삶의 흥미나 재미를 위해서’라고 답한 비중은 같은 기간 73.5%에서 72.5%로 소폭 하락했다. ‘당첨이 되지 않아도 좋다’란 질문에 대해 긍정한 답변 비중도 70.5%에서 68.3%로 줄었다.

○ 복권 판매액은 늘지만 1인당 구매액은 줄어


서민들의 간절한 복권 바라기에 복권 판매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2조9392억 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2조6208억 원)보다 12.1%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복권은 불황에 많이 팔린다’는 속설이 통한 셈이다.

이는 불황 속 대박을 바라는 수요 증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영업에 타격을 받은 사행산업 수요를 흡수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카지노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413억 원으로 2019년(2조9305억 원) 대비 64.5% 감소했다. 경마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890억 원으로 전년(7조3572억 원) 대비 85.1% 줄었다. 경륜, 경정의 지난해 매출액 역시 전년 대비 80% 이상 급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복권 매출액이 사상 최대로 늘어난 것은 나머지 사행사업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복권업계에 따르면 전체 복권 판매액은 늘고 있지만 1인당 구매액은 줄고 있다. 복권 구매자들의 경제 사정이 워낙 팍팍하다 보니 개인별로는 ‘찔끔 구매’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A복권방 사장 장 씨는 “로또 판매액이 많이 늘었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요즘 다들 사정이 안 좋으니 많이 살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실제 이날 복권방에서 만난 서민들은 힘겹게 모은 푼돈으로 복권을 사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 씨(80)는 이날 로또 3000원어치를 샀다. 고령의 지친 몸으로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번 돈이었다. 김 씨는 매주 꾸준히 로또를 산다. “50대, 60대인 자식들이 아직도 장가를 못 갔어요. 로또에 당첨되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애들 결혼을 시켜주고, 집도 사고 싶어요.”

○ 코로나19 실업 직격탄 여성도 복권 구매 대열 가세


최근 새로운 복권 트렌드는 여성들의 구매가 늘고 있는 점이다.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복권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여성 비중은 2016년 28.2%에서 지난해 45.3%로 늘었다. 1등 당첨자를 8명 배출한 종로구의 한 복권방 사장은 “여성들은 예전엔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사가곤 했지만 요즘에는 20대 젊은 여성들도 수시로 들러 많이 구매해 간다”고 설명했다.

복권방에서 만난 주부 방임숙 씨(65)는 복권을 산 이유에 대해 “집이 없어서 샀다”며 “집값이 너무 올랐다. 로또 당첨되면 발 뻗고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할 거다”라고 했다. 연금처럼 당첨금을 받는 ‘연금복권’도 많이 찾는다. 연금복권을 산 여성 김희옥 씨(55)는 “앞으로 돈이 어디에 나갈지 알 수가 없으니 당첨금을 매달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복권을 샀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구매 증가는 코로나19 고용충격이 여성들에게 집중된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과거 경제위기에서는 주로 제조업에서 고용이 줄어 남성들의 타격이 컸다. 코로나19 위기는 대면업종이 많은 서비스업과 서비스업 취업 비중이 높은 여성들에게 충격이 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월 내놓은 ‘코로나19 고용충격의 성별격차와 시사점’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해 3월 핵심노동연령대(25∼54세) 여성 취업자의 전년 동기 대비 감소 폭(54만1000명)은 남성(32만7000명)의 약 1.7배였다.

물론 복권 열풍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종로구 복권방 근처에서 만난 이모 씨(52)는 “요즘 로또를 사는 젊은이가 많이 늘었다”며 “복권은 나라가 허락한 도박이다. 한 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이 씨의 손에도 복권 ‘스포츠 토토’ 용지가 한 움큼 가득했다.

만원어치 팔면 550원 수입… 로또 당첨만큼 어려운 복권 판매인 당첨
신청자 매년 늘어 올해 40대1… 장애인-유공자 등 우선 선정
경쟁 치열하자 불법대여 생겨… “좋은 자리 이미 차” 개점 포기도


‘복권 판매인 합격자 발표됐어요. 대기 2번인데 합격할 수 있을까요.’ ‘복권 판매인에 당첨되면 판매점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나요.’

복권 판매인을 희망하는 이들이 온라인에서 자주 묻는 질문들이다. 복권 판매가 늘면서 복권 판매인 지원자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판매인 경쟁이 워낙 치열해 ‘복권 판매인에 당첨되기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판매인 지원자들은 ‘재수’ ‘삼수’까지 하며 판매인 합격을 꿈꾼다.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복권 판매인 신청자는 8만2526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36.2%(2만1937명) 늘었다. 신청자는 2017년 6만4493명, 2019년 6만4553명으로 늘다가 작년 6만589명으로 줄었지만 올해 다시 훌쩍 뛰었다. 경쟁률도 작년엔 34 대 1이었지만 올해 40 대 1로 높아졌다.

로또처럼 인기가 많은 복권 판매인은 어떻게 지원할까. 복권위원회와 수탁사업자인 동행복권은 각 홈페이지에 정기적으로 신규 판매인 모집공고를 낸다. 희망자들은 온라인으로 판매점 개설 희망 지역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복권위원회는 장애인,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한 부모 가정의 가구주,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저소득층 등을 우선적으로 복권 판매인으로 선정한다. 한번 선정되면 평생 운영할 수 있고 양도는 안 된다.

복권 판매인은 정부로부터 복권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판매액의 5.5%(부가세 포함)다. 하루에 10만 원어치를 팔면 5500원을 버는 식이다. 지난해 복권 판매액이 5조4152억 원이었으니 전국 판매점들이 3000억 원가량의 수입을 거둬들인 셈이다. 불황에 로또가 인기를 끌수록 판매점 수익도 불어난다.

이렇게 쏠쏠한 수익을 손에 쥐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다 보니 복권 판매권 불법 대여가 생겨나기도 한다. 로또 판매 수익을 노려 판매권자의 이름과 단말기만 빌려 불법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권 판매인에 당첨됐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당첨자들은 실제 판매점 개업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복권 판매인에 당첨되면 6개월 안에 복권을 팔 영업장을 소유하거나 임차해야 복권 판매점을 열 수 있다. 이때 영업장은 기존 판매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열어야 하고 위치를 동행복권 측과 협의해야만 한다. 이뿐이 아니다. 판매점 개설 및 관련 설비 설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당첨이 취소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상 복권 판매인에 당첨돼도 판매인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판매점 가운데 해지한 점포 비율은 2016년 1.6%에 불과했지만 2020년 7.1%로 뛰었다. 복권 판매인에 선정됐다가 영업을 포기한 A 씨는 “당첨되기만 하면 대박이라고 생각하고 신청을 했지만 막상 판매점을 열려고 보니 좋은 자리에는 판매점이 다 생겨버려 새로 개점할 곳이 없었다”며 “로또 판매 마진도 5%가량이어서 본전 챙기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복권 판매인 합격자의 가족인 B 씨는 “판매점을 열 곳을 찾아도 월세가 워낙 비쌌다. 월세가 저렴한 자리는 위치가 나빠 수익 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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