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운]‘오징어 게임’의 부활과 온고지신의 지혜

김상운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9-30 03:00수정 2021-09-3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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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문화부 차장
최근 동네 놀이터에 푹 빠진 초등학생 딸에게 ‘다방구’ 놀이를 가르쳐줬다. 당연히 알고 있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처음 들어보는 놀이라고 했다. PC방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1980년대 얼음땡과 더불어 다방구는 아이들의 양대 놀이였다. 얼음땡이 ‘동작 그만’의 절제력을 요구한다면, 다방구는 동네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공간 감각과 술래가 포기할 때까지 숨는 끈기가 관건이다. 모두가 성인이 돼서도 필요한 미덕이랄 수 있겠다.

재밌는 건 딸이 전파한 다방구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신흥 게임’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경도(경찰과 도둑의 준말) 놀이보다 재밌다”며 다방구를 하기 시작했단다. 옛 동네놀이가 새롭게 부활한 셈이다.

최근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드라마 ‘오징어게임’도 다방구 같은 동네놀이에서 비롯됐다. 드라마에서는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 여섯 가지 게임이 나온다. 이 중 유독 오징어게임을 제목으로 정한 데 대해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내가 어릴 때 했던 게임 중 가장 격렬한 것이라 이걸 목숨 걸고 하는 것에 대한 처절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오징어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30대 이하 세대는 황 감독의 말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초등학생 때 이 놀이(1980년대 서울 일대에선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렀다)를 하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이 터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미식축구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몸싸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옛 동네놀이 중 ‘찜뽕’도 최근 재조명됐다. 3년 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찜뽕과 비슷한 ‘베이스볼5’의 올림픽 정식종목 등재를 추진키로 한 것. WBSC는 베이스볼5의 경기 규칙을 발표하면서 “전용 장비와 경기장이 필요한 야구는 제3세계에서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돼 베이스볼5 보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먹야구로도 불리는 찜뽕은 야구와 비슷한데, 배트 대신 주먹으로 공을 치는 게 다르다. 이희환 인천대 학술연구교수가 올 6월에 발표한 ‘권구(拳球·찌푸, 찜뿌, 찜뽕) 연구’ 논문에 따르면 찜뽕은 일제강점기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 탄생해 권구(주먹야구)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행해졌다. 물자가 부족해 배트나 글러브를 구하기 힘든 시절 찜뽕놀이는 소년들의 야구 열정을 채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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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놀이의 화려한 부활은 여러모로 반갑다. 특히나 콘텐츠가 전부인 시대에 ‘오징어게임’의 흥행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는 갈수록 심화되는 세대 간 문화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올드 미디어화된 TV가 트로트 열풍으로 뒤덮인 반면, 젊은층은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몰리고 있다. 연령층에 따라 이용하는 미디어마저 나뉘는 세태에서 옛 동네놀이를 매개로 신·구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고도성장의 후과로 옛것이 쉽사리 잊혀지는 우리 사회에서 ‘오징어게임’ 열풍은 과거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오징어 가이상#온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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