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해당 소스 코드를 이용해 자신만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파는 것도 가능하다. 집단지성의 힘과 결합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오픈소스의 최대 장점이다.

오픈소스 개념의 정립과 리눅스의 등장
레드햇이 설립된 1993년 이전부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은 꾸준히 주목받고 있었다. 특히 1985년에 미국 출신의 프로그래머 ‘리처드 매튜 스톨만(Richard Matthew Stallman)’이 지식과 정보의 독점에 반기를 들며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 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한 것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나아갈 길을 마련한 시발점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저작권(Copyright)에 반대되는 '카피레프트(Copyleft)' 개념이 등장했으며, 소프트웨어의 자유로운 이용 및 개발, 소프트웨어와 소스 코드의 동시 배포를 비롯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지향점 및 관련 규정을 정리한 ‘공용사용권(GNU General Public License)’ 제도도 마련되었다. 그리고 1991년, 핀란드 출신의 프로그래머인 ‘리누스 토발즈(Linus Benedict Torvalds)’가 개발한 리눅스 운영체제가 처음 세상에 공개되면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보급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빨간 모자 사나이와 야심 찬 사업가의 의기투합
이후 많은 개발자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한 다양한 형태의 리눅스 배포판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훗날 레드햇의 공동창업자가 된 ‘마크 유잉(Marc Ewing)’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살던 그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빨간색 모자를 즐겨 쓰고 다녔는데,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빨간 모자 사나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후 마크 유잉이 개발한 리눅스 배포판의 이름이 ‘레드햇 리눅스(Red Hat Linux)’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유닉스(UNIX) 소프트웨어 판매 업체인 ‘ACC 주식회사(ACC Corporation)’를 운영하던 ‘밥 영(Bob Yong, 이후 레드햇의 초대 CEO)’은 마크 유잉의 리눅스 배포판에 주목했다. 밥 영은 다른 제품에 비해 확실히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이 배포판의 판권을 달라고 마크 유잉에 요청했다. 제품이 필요했던 밥 영, 유통망과 마케팅 능력이 필요했던 마크 유잉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했으며 1993년 3월 26일, 두 사람은 레드햇을 함께 설립하기에 이른다. 레드햇 리눅스는 1994년에 정식 출시되었고 10월에 나왔다 하여 ‘할로윈(Halloween)’이라는 코드명이 붙었다.

높아지는 주목도, 뒤바뀐 인수 대상
레드햇 리눅스는 우수한 성능과 기능, 그리고 충실한 지원을 바탕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고 레드햇에 대한 업계 전반의 주목도도 점차 높아졌다. 레드햇은 1995년, 무료 소프트웨어의 상용화를 돕는 기업인 ‘시그너스 솔루션(Cygnus Solutions)’ 사장인 ‘마이클 타이먼(Michael Tiemann)’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5년 후에는 상황이 역전, 오히려 레드햇이 시그너스 솔루션을 인수했으며 마이클 타이먼은 레드햇의 부사장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훗날 오픈소스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레드햇의 시작은 이렇게 소박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태동을 시작한 오픈소스 시장에 대한 높은 기대, 그리고 창업자들의 열정이 더해져 급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레드햇이 시도한 각종 혁신은 업계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2부에서 해당 내용을 살펴보며 레드햇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보자.
동아닷컴 IT전문 김영우 기자 peng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