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을 느낀다는 것[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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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 변호사·한국IBM 법무실장
윤효정 변호사·한국IBM 법무실장
“주지 않는 사랑은 지고 나르는 고통이니까요.”

―박노해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 중

먼 행성에서 지구에 불시착한 소녀에게 시인이 지구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과 아이들, 정의, 사랑이 있지만 인생의 유한함, 인간의 이기심, 소유욕 또한 있어 슬프다고 한다. 소녀는 시인에게 지구를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그는 사랑을 전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주지 않는 사랑은 고통이라는 이유에서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모자라고, 사랑을 주지 못하면 고통까지 받는다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 급식 봉사에서 만난 한 성직자를 통해 이 문장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급식소가 폐쇄 위기에 놓이자 노숙인들이 끼니를 굶으며 겪을 무기력함과 좌절감이 느껴져 밤새 울었다고 했다. 상대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면 그 고통까지 느끼는 사랑의 단계에 이른다는 시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만큼의 사랑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공감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필요하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다툼을 마주하고 산다. 대부분 다툼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은 상대의 시선에서보다는 각자 입장에 매몰돼 교착상태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변호사 역시 상대의 약점을 찾고, 내 주장을 공고히 할 방법을 우선 고민한다.

하지만 내 주장과 논리만 파고들기보다는 상대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공감할 때 오히려 보다 쉽게 분쟁을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로 좋은 변호는 다툼 당사자 사이 시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다툼 이면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각자가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게 돕는 데 있다. 다투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만족할 합의점을 찾도록 돕는 게 지구에서의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윤효정 변호사·한국IBM 법무실장
#주지 않는 사랑#고통#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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