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 녹는’ 도가니… 나이 들수록 더 생각날듯[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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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원천설렁탕’의 무릎도가니탕. 임선영 씨 제공
경기 화성시 ‘원천설렁탕’의 무릎도가니탕.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국물은 참 뽀얗고 구수하고 진했다. 소의 사골과 우족, 도가니 부위를 넣고 12시간 이상 가마솥에서 끓였기 때문이다. 건더기는 녹진하고 부드럽다. 틀니를 한 어머니가 한 그릇 드시고는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다고 하실 정도다.

경기 화성시 ‘원천설렁탕’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맛집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과 인근 대기업 직원들의 밥집으로 오랜 시간 자리매김한 곳이다. 특히 소 무릎도가니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무릎도가니탕이 인기다.

도가니란 소의 무릎 뼈 주위에 붙어있는 살점과 연골을 통틀어 가리킨다. 도가니살은 비계가 없고 근섬유가 많아 구워 먹기에는 질기지만 푹 삶으면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여기에 뼈 주위 연골 부위는 투명한 아교 단백질로 구성돼 오랜 시간 익혀내면 젤리처럼 쫀득거리며 찰진 맛이 일품이다. 다른 식당에서 도가니탕을 주문하면 대개 스지 부위만 나오는데, 스지는 도가니와 다르다. 스지는 소의 사태살에 붙어 있는 힘줄과 주위의 근육이며 ‘근(筋)’ 자의 일본식 발음이다. 약간 불투명하고 쫀득쫀득한 콜라겐 덩어리로 도가니와 비슷한 맛을 내 구하기 힘든 도가니 대신 스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원천설렁탕 음식 맛의 비결은 좋은 재료를 구해 푸짐하게 넣는 것이다. 무릎도가니는 소 한 마리당 네 개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다. 이곳의 도가니탕 1인분에는 통무릎도가니 절반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스지 부위도 조금 들어가 있어서 씹는 맛이 다양하다. 무릎도가니가 150g, 스지 부위가 80g으로 총 건더기 무게가 230g이니 한 그릇만 먹어도 든든하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주재료를 듬뿍 넣는 것이 맛의 포인트다. 국물은 정갈한 구수함이 매력적이다. 곁들이는 것이라곤 소량의 생강과 인삼뿐이다. 생강은 끓일 때 넣어 느끼함과 잡내를 잡고 인삼은 손님상에 올릴 때 살짝 가미해 향을 입힌다. 소금간이 되어 있지 않아 훌훌 마시다 보면 엄마 품에 안겨 모유를 먹는 기분이 든다. 국물이 차가우면 묵처럼 탱글탱글하게 변하는데 이는 도가니와 우족에서 나온 콜라겐 성분 때문이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국산 재료로 직접 담근다.

전국의 탕반 맛집이나 노포를 다녀보면 좋은 재료를 쓰고 정직하게 하는 식당일수록 국물 맛이 평온하다. 처음에는 그 맛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이 또한 학습 효과라 할까, 재료와 요리사에 대한 신뢰가 작용해 만족감은 더해졌다. 도화지 같은 국물에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약간의 소금과 후추, 파채를 가미하는 과정이 좋았다. 깍두기 국물을 한두 번 떠 넣거나 깍두기를 통째로 투하하여 국물이 선홍빛으로 변해가는 것도 재미있다. 푹 고아진 무릎도가니탕을 먹으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 한여름 더위를 힘들어할 것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릎이 시리고 이가 약해져 씹어 삼키는 쾌감이 덜할 것이다. 그때도 이 식당 한쪽에 앉아 따끈하고 편안한 국물을 마신 뒤 입에서 살살 녹는 도가니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오늘 뭐 먹지#도가니탕#원천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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