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만의 ‘캐슬’ 찾기[카버의 한국 블로그]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입력 2021-06-25 03:00수정 2021-06-25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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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영국 사람들에겐 집은 캐슬(castle·성·城)과 같다는 말이 있다. 크기, 가격과 상관없이 그 집에 머무르는 사람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한 곳이라는 의미다. 이 영국 속담은 비단 영국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든지 집이란 모든 이에게 그런 캐슬과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영국 사람으로서 서울에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영국에서 느끼는 안전하고 아늑한 나만의 캐슬에서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안전하고 주변에 맛집이 가득하고 지하철역과 가까워 살기에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성냥갑 같은 사이즈라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많이 들지 않고, 자고 얼른 일어나서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공간이라 사실 최근에는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한국을 홍보하는 유튜버로서 한국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하고, 재미있고, 살기 좋은지에 대한 주제로 많은 콘텐츠를 찍었지만 살 집을 찾는 일만큼은 안타깝게도 영국이 한국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아니면 내가 한국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거라는 면에서 아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서,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내가 살고 싶은 나만의 ‘캐슬’을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영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한국 친구들이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빠른 시간 안에 살 집을 결정하는 듯이 보인다. 어마어마한 집 가격을 고려하면 살 집을 결정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모든 아파트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나 마포구에 있는 아파트나 다 비슷해 보이니 예산만 맞으면 아무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에서 집을 살 때는 같은 가격의 집이라도 여러 조건을 따져보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평생 살아갈 단 하나의 집을 고르고 또 골라서 결정한다. 물론 여러 채의 집을 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니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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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차이라면, 영국에서는 매물로 나온 집들은 마당 또는 외벽에 ‘매매’ 또는 ‘임대’라는 표지판을 세워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게 표시를 해놓는다. 그래서 동네에서 돌아다니면 어떤 매물이 어느 부동산에서 나왔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영국에서 손가락 반지로 결혼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집에 대한 온라인 홍보는 영국이 한국보다 좀 더 나은 듯하다. 영국에서는 온라인에 매물을 올릴 때에도 가격과 상관없이 딱 한 곳의 부동산에서 맡아서 정성껏 집과 관련된 온갖 정보들과 사진 등을 올린다. 한국 부동산 사이트는 여러 부동산에서 같은 매물을 올리기도 하고, 비싼 집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의아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올라온 사진이 있어도 집을 깨끗이 정리하지도 않고 어두운 배경으로 신경 쓴 흔적이 별로 없는 상태로 찍은 사진들도 많이 본 듯하다. 영국에서 매물 사진을 찍어서 올릴 때는 마치 데이팅 앱에 올리는 것처럼 신경 써서 사진을 찍는 데다 심지어는 과도한 ‘포토샵’을 쓴 것처럼 실물보다 훨씬 더 멋있게 나오도록 한다. 집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몇몇 시설이 있는지 없는지만 올리는데, 영국은 평면도 및 각 방의 폭과 방에 대한 설명까지 올리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성의 없이 올린 것처럼 보이는 매물이 심지어 비싼 가격임에도 금방 팔려 나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면 이렇게 쉽게 집을 매매하는 듯 보여도 한국 부동산에서는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중개료를 지불해야 하는 게 영국과 다른 점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아파트보다는 커다란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사는 것이 내 소원이다. 한국에도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그런 집에서 살 꿈은 깨라”고 핀잔을 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도 서울이라는 절을 떠나서 사는 건 싫으니 서울의 아파트에 내 취향을 맞춰서 살아가야 할 듯하다. 베란다에 화분을 잔뜩 들여놓고 나만의 정원을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집#캐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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