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을 도운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도왔다”[파워인터뷰]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6-22 03:00수정 2021-06-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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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서 28년째 의료봉사
이석로 코람톨라 병원장
이석로 코람톨라 병원장은 3년마다 ’내가 이곳에 여전히 필요한가’를 자문한다고 한다. 이석로 원장 제공
《1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제31회 삼성호암상 시상식.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이석로 방글라데시 코람톨라 병원장(57)이 호명되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이정순 여사(85)가 막내아들의 부축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실시간 영상을 통해 그는 “봉사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삶의 본질”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회자가 어머니께 한 말씀 하라고 권하자 이 원장은 “어머니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이런 그를 15일 ‘줌’ 영상으로 인터뷰했다.》







“딱 3년 만.”

1994년 18개월 된 아들과 부인을 대동하고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에 도착한 청년의사 이석로의 이 약속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못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해, 방글라데시 파견 의사 모집에 지원했다. 153cm 신장 때문에 병역면제를 받았으니 군대 기간만큼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여놓은 일들이 눈에 밟혀 ‘2년만 더, 3년만 더’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약사인 부인도 현지 일을 적극 도와줬고, 아들딸이 더 태어났다. 현재 딸은 성균관대를 나와 방글라데시에서 수학교사로 일한다. 큰아들은 미국 휴스턴대에서 박사 과정 중이고 막내아들은 연세대 재학 중 입대했다.

―열악한 교육환경인데 자제분들이 잘 컸다. 한국 학부모들이 부러워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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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보다시피 너희를 제대로 지원해줄 수 없는 형편이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라’고 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전공을 찾아 즐겁게 공부하고 있으니 고맙죠. 딸은 맡은 일에 긍지를 느끼는 것 같아요.”

코람톨라병원은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걸리는 농촌에 있다. 1992년 7개 기독교병원연합단체인 한국의료해외선교회(KOMMS)가 설립했다. 의료보험조차 없어 질병에 무방비 상태인 현지인들에게 저렴하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가 2000년대에 콤스에 보낸 ‘방글라데시에서 생긴 일’이란 보고서가 있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는 ‘위가 천공됐으니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가려 하는 앙상한 아저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내가 수술하면 우리 식구는 다 죽게 된다”며 “내가 죽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이 에피소드를 ‘어린이 용돈도 안 되는 1만 원이 없어 죽음을 선택하는 곳이 방글라데시’라고 맺었다.

이석로 원장이 환자 처치를 하고 있다. 의사가운 같은 건 없지만 소독 등 위생에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석로 원장 제공
결국 이 환자는 수중에 가진 돈만을 내고 수술을 받아 무사했다고 한다. 이석로 원장은 이런 환경을 떨치고 돌아오지를 못했다.

가정의학 전문의인 그는 처음 몇 년간 약 처방과 간단한 처치 위주의 진료를 했지만 외과수술 수요를 외면할 수 없었다. 콤스에 “제 급여를 절반으로 나눠 외과의 한 명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에게 연 4만 달러가 지원됐는데 2만 달러로 낮춰 2명에게 달라고 한 것. 한국에서 외과의가 파견돼 수술실이 활기를 띠게 됐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매년 전남대병원 등과 연계해 구개구순열(일명 언청이)과 선천성 기형수술을 해주는 의료봉사도 활발히 벌였다. ‘가성비 좋은 병원’으로 소문나 코로나 직전에는 하루 300여 명, 연간 8만 명을 진료했다. 의사 15명, 직원 120명이 연간 백내장 수술 1600건, 외과수술 1000여 건씩을 해냈다.

이 원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립’이다. 병원이 외부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려 애썼다.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진료비는 다른 병원의 10분의 1 수준이었는데 엑스레이 장비 하나 없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기기 등을 하나둘 도입하고 유료 진료 비중을 늘렸다. 그래도 진료비는 다른 병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일방적인 도움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이곳에서 배웠다. 자립하려면 최소한의 자존감을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우리가 돕는 것은 그 부분이다.”

예컨대 그는 가난해서 학업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돕기 위해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장학금은 49%만 지원한다. 절반 이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은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너도 돕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을 돕는 일은 직접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셨다.

“요즘 선진국일수록 국가가 빈자를 돕고 사람들은 ‘정부가 해줄 것’이라며 발을 빼는 분위기다. 이러면 다들 외로워진다. 사람들은 남을 돕는 일에서 마음이 떠나고 받는 사람도 고마움을 모른다. 가능하면 국가가 하는 일을 줄이고 공동체가 돕는 일을 늘려야 사회가 더 따뜻해지고 실질적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 원장은 선한 의지의 선순환을 꿈꾼다.

“제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콤스의 기금은 7개 기독교병원 직원 일부가 월급의 0.5∼1%를 떼어내 모은 돈이다. 이 병원들은 어렵던 시절 미국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이제 우리가 이곳에 도움을 주고 발전시키면 이들은 더 어려운 곳을 돕게 될 것이다.”

그는 2019년 보령상(상금 5000만 원)과 아산상(3억 원) 등 상금이 따라오는 상을 연달아 받았다. 이때 그가 밝힌 솔직한 소감이 재미있다. “돈이 정말 필요했다. 수술환자를 옮길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정 네 사람이 환자 침대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수술이 몰리면 침대가 없어 환자를 바닥에 눕혀야 하는 상황이다.”(보령상 수상 소감)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만들었나. 호암상 상금 3억 원은 어디 쓸 예정인가.

“첫 상금은 폐수처리장 지을 돈 7000만 원이 필요해 그리로 돌렸다. 그 뒤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기 위해 건물 증축에 들어갔다. 2층 위에 5층으로 올릴 계획인데 뼈대만 잡아놓고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다. 제일 먼저 엘리베이터를 넣으려 한다.”

―코람톨라병원은 수상 전까지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널리 후원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립할 태세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관심을 받게 되면 오히려 병원을 망칠 수 있다고 봤다. 용돈 1만 원 받던 사람에게 2만 원 주면 좋아하겠지만 100만 원 안겨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거액의 상금이 들어왔을 때 우리 직원들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 이제 100만 원 관리할 수준이 됐구나…. 병원을 더 키워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병원을 확장하고 간호대학과 보건대학을 만들겠다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그는 3년마다 “아직도 내가 이곳에 필요한가”를 자문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이런 일을 다 하려면 10년은 더 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여기서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내가 봉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내가 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해간다고 믿는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어머니일 듯하다.

“정말 그렇다. 부모님은 닥치는 대로 일하며 5남매를 길러주셨다. 그간 별 반대를 않으셨는데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쩍 ‘빨리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이석로 원장 프로필
▽1964년: 광주 출생
▽1989년: 전남대 의대 학사
▽1994년: 광주기독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수료
▽1994∼1997년: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 과장
▽1997년∼현재:방글라데시 코람톨라병원 원장
▽2007년:제2회 해외봉사상 대통령표창
▽2019년:제35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제31회 아산상 대상 수상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이석로#병원장#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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