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는 보은 인사, 코드 인사가 특히 심한 분야다. 성과 측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문화적 소양’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 보은 인사 중에서도 ‘끝판왕’은 박근혜 정부 시절 79세로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된 코미디언 자니 윤이었다. 그는 대선 당시 대통령의 재외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임명됐는데 “인사 자체가 코미디”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예술계 인사를 놓고 자니 윤 인사 못지않은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보은 인사에 대한 우려는 자칭 ‘뼛속까지 이재명’인 배우 이원종 씨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지원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면접 심사에서 후보 전원이 탈락해 없던 일이 됐지만 문화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이후 이재명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모델 출신 배우 장동직 씨와 코미디언 서승만 씨가 유서 깊은 국립정동극장 이사장과 대표이사에 임명되자 문화계가 끓기 시작했다. 정동극장 대표는 스타 공연기획자인 홍사종, 국립발레단 단장을 지낸 최태지같이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맡아 온 자리다.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에 친여 성향 역사학자 전우용 씨,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임명한 것은 이쪽 분야의 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맡아 온 자리이고, 문화관광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중 유일한 국책 연구기관으로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황 씨는 2021년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보은 인사 논란에 사퇴한 적이 있다.
▷문화예술단체 65개와 개인 794명은 21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전문성 없는 인사는 예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파행 인사의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인사가 전문성보다 인지도, 역량보다 권력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강호동이나 서장훈을 앉히는 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행사를 제안한 단체는 진보 성향의 문화연대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비서관이다.
▷문화예술계 보은 및 코드 인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의 힘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예술계의 취약성이 빚어낸 나쁜 관행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고, 코드가 맞는 단체에 지원이 몰린다는 잡음이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이런 풍토에서 빚어진 것이다. 정치가 예술을 지배하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문화 선진국들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다. 어느 예술인이 일갈했다. “예술을 정치의 놀이터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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